피신해 온 이들 중 말수가 없던 선해는 민규를 따로 불러내어,
그는 두 가지를 떠올려야 한다 말해줍니다.
선해의 힌트를 받은 민규는 더 혼란스러워집니다.
한편, 차 사고 때 다친 승희의 이마의 혹은 점점 커져갑니다.
괴물에게 물린 정민 또한 의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민규 또한 정의로운 나머지 부상을 입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이들 중 파락을 기억을 되찾아 파락을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있을까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왜 민규는 두 개를 떠올려야 할까요?
사라진 아내가 차려준 밥상 매미가 울 때 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편을 모두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삼인상에서 나오는 '나'는
묏말골에 본인의 선택이 아닌 엄마의 선택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엄마가 그의 본적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화척이라 불리게 됩니다.
묏말골 사람들은 삼인상을 치르며, 그들만의 돈독한 정을 보이다가,
나라에서 발령 나온 군사들에 의해 그들만의 규칙이 무너지게 되자,
'나' 탓,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 탓을 합니다.
이들이 보인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은 이기적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나의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결과물을 낸다면,
세상이 말하는 정의의 편에 서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리고 매미가 울 때에서 나오는 '민규'는
파락에 아내와 같이 갇히게 됩니다.
그는 시종일관 아내 걱정 뿐이며, 오직 정의를 위해 움직입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타인의 목숨을 더 먼저 위하는 그는 모범적이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실제로 그처럼 행동하기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누가 칼을 들고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하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그 앞에서 112에 전화하는 것조차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보다 더 나아가, 칼을 든 사람에게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기세입니다.
어찌 보면, 묏말골 사람들과 '민규'의 행동은 대조적입니다.
사회적 정의로 본다면 '민규'처럼 행동하는 게
옳은 행동으로 보입니다.
저부터가 '민규'처럼 행동하겠다고 확답을 하긴 어렵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민규'가 옳다 배우고 있지만,
'나부터 잘 되어야 다른 사람도 챙기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사라진 아내가 차려준 밥상은
호러 소설과 공포 소설 장르 쪽에 가깝습니다.
이상, 사라진 아내가 차려준 밥상,
출판사 (주)투유드림 서평 후감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