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10
아비탈 로넬 지음, 강우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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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철학자 아비탈 로넬의 <어리석음>. 지독하게 어렵다. 한 문장도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 단어와 단어 사이를 졸음 운전하는 것 같다. 그동안 현대철학과 정신분석학을 나름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이 책에서 까만 건 글자요 하얀 건 종이이다. 여러 번 집중해서 읽어야 아주 조금 감이 온다. 현대철학과 정신분석학이 녹아서 흐트러진 책이다.

저자 아비탈 로넬은 자크 데리다의 제자이다. 데리다가 죽기 전 마지막 제자 중에 한 명이다. 데리다는 로넬이 쓴 <어리석음>을 극찬했고, 투병 중 자신의 마지막 세미나에서 출간 전인 이 책의 내용을 주제로 다루었다. 로넬은 이 일을 아주 영광스럽게 여긴다. 그만큼 무게 있는 책이지만, 나로서는 그 스승의 그 제자답게 난해하기 짝이 없다. 느끼는 건 많은 데 이해하기는 힘든, 그런 '느낌적인 느낌'의 책이다. 하지만 문제의식, 이 책이 던진 중요한 문제의식 때문에 학구열이 타오른다. 끝까지 정독하고 싶다.

이 책은 '어리석음'에 관한 책이다. 처음엔 이 말이 뭔가 했다. 그런데 서문과 1장을 읽다보니 존재론에 관한 내용이다. "철학이 존재의 어리석음을 제거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이 책에서 로넬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자명한 지식으로 만들고자,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이면을 제거한 서구철학을 비판한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본질은 자명성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라고 말한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한 존재는 그것에 부여된 의미보다 크다. 이것이 현대 철학의 존재론이다.

• 존재론은 의미론을 비판한다. 어떤 존재에 완벽한 의미를 붙이려는 의미론의 억압을 반대하고, 의미화되지 않은 존재의 남은 부분(존재의 잉여)을 옹호한다.

• 의미는 언어로 만들어진다. 이때 존재에 대한 억압이 생긴다. 언어는 존재를 규정하기 위해 존재를 죽인다. 존재의 많은 부분을 잘라내고 그 일부만을 들어서 참된 의미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의미론의 폭력이다. 석탄을 캐기 위해 산을 부수는 것처럼, 의미론은 의미를 캐기 위해 존재를 파괴한다.

• 서구 철학은 그동안 의미론을 추구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언어화해서 완벽한 의미로 만들려고 했다. 이들은 무의미한 것들, 즉 어리석음이 존재하는 걸 두려워했다. 그래서 자명성이라는 대의하에 어리석음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래서 존재를 깊이 탐구해서 의미를 붙였다.

• 하지만 이것은 실패했다. 존재는 의미보다 크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미를 갖다 붙여 존재를 다 설명해도 존재는 다 설명되지 않았다. 존재는 언어의 그물망을 빠져나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어리석음을 제거하고자 한 한 철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음은 살아남아, 자신이 존재의 본질임을 입증했다. "존재란 본래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 사실을 서구 철학은 어리석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음이었다.

• 로넬의 '어리석음'은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좀비'와 같다. 현대 철학은 이 의미의 탄압에서 살아남은 존재의 잉여를 사유한다. 라캉의 주이상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등도 거의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모두 '쓸모 없다' 여겨진 것들을 사유한다.

• 문학은 존재의 어리석음을 사유함에 있어 철학보다 많은 기여를 했다. 철학이 존재에 의미를 붙이는 데 여념이 없을 때, 문학은 규명할 수 없는 존재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려고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이다. 시는 존재를 규정하지 않고 표현 부재한 것을 판단 정지 상태로 남겨 둔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어리석음을 사유하는 사람이다.

여기까지. 우선 이렇게만 정리한다.

이 책이 나를 끌어당기는 건, 우리 사회의 의미론적 억압. '학생'은 '공부'를, '주부'는 '살림'을, '직원'은 "회사'를, '국민'은 '국익'만을 위한 존재라는 의미론의 억압을 가로막고, 한 사람은 그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존재는 의미보다 크다. 그러니 함부로 타인을 규정하지 말라"는 메시지에 어려운 내용임에도 빨려든다.

특별히 상처입는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 위안부 할머니 같은 분들을 고골의 말을 빌리면 '씩씩한 혀'로 너무나도 쉽게 "규정하는"의미론적 폭력을 눈 앞에서 보는 지금, 이 책은 나에게 위로와 저항심을 동시에 준다. "모든 존재는 그것에 부여된 의미보다 크다. 그것을 보는 것이 윤리이자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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