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덕 자서전 믿음의 글들 167
양혜원 / 홍성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수원의 설립자 대천덕 신부님의 자서전이다. 읽는 동안 작년에 돌아가신 대천덕 신부님이 생각이났다. 한참 서점에서 일하던 때였는데, 아침에 GP에 가보니 넘어져서 의식을 잃으신 신부님을 위한 긴급 중보기도가 나와있었다. 그후로 몇일 지나지 않아서 그분은 주님 품으로 가셨다.

나는 그분의 이름을 가끔 '대덕천'이라고 부르곤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천덕꾸러기라는 단어가 자꾸 떠올라 설마 그분의 이름이 천덕일까 하는 마음에 은연중에 그렇게 불렀던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예수원을 설립하고 한국에서 선교하신 분. 성경적토지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신부님.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대천덕 신부님의 모습이었다.

그분은 성공회 출신으로 처음 이 나라에 1957년 오셔서 성공회 미가엘신학원을 재건립하셨다. 주님께선 7년동안 가르치는 교사로 그분을 쓰시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7년 후 예수원을 설립하셨으며 돌아가시기 까지 예수원에서 사역하셨다.

이 책은 그분의 가족, 어린시절, 청년시절에 대한 부분도 많이 나온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가 목사님 이셨지만 정작 대천적 신부님은 어린시절 그리 신실하진 못했다. 계속적인 방황과 실험을 거쳐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을 받아들인 것은 청년때이다. 그분은 사회경험도 많이 하셨다. 선원생활을 통해 철저한 노동자 계급으로 살기도 했고 정치참여도 했다. 이 부분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지만 그분의 성경적토지 개념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으로 세워졌으리라 판단된다.

또한 신부님은 육체적으로 그다지 건강하진 못하신것 같다. 말년에 병으로 쓰러지시거나 수술을 받기도 하셨다. 하지만 육신의 연약함이 그분의 사역을 막진 못하였음을 확신한다.

작년에 종로에 갔을 때 성공회 건물을 지난적이 있다. 성공회에 대해서 많이 알진 못한데, 성공회는 신부님이 목사님이라는 것과 가톨릭 신부가 입는 옷을 입고 다니며, 가톨릭과 기독교의 중간이 성공회라고 한다. 그리고 성공회 신부는 결혼을 할 수 있다.
대천덕 신부님은 원래 장로교인이었으나 후에 성공회로 가신 분이다. 이 책에서 그분은 성령님에 대해서 매우 자주 말씀하신다. 모든 것이 성령님을 통해 듣고, 행하고,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코이노니아. 예수원을 통해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이루길 원하신 주님을 전하고 있다.

200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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