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빈리 일기
박용하 지음 / 사문난적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빈리? 어디지? 외국?

이런 의문으로 첫페이지를 연다.

 

  인터넷 검색으로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에 있는 마을이란걸 알게된다. 오래전 군생활을 오빈리 근처에서 한지라 왠만하면 알만했음에도 잘 몰랐다는 것은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으로 다가왔다. 이 책 역시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느낌을 가슴 저리게 안겨주었다.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은 비밀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흥미롭다. 더구나 시인의 일기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분명! 남다를거야! 라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색되게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미리 체면을 걸어보았다. 똑같은 사람이야...그냥 다른 생각, 다른 가치관, 다른 환경을 가지 사람의 일기일뿐이야라는 주문을 걸어 가벼운 마음으로 글구경하듯이 한글자 한글자 읽어나가게 된다.

 

 어! 근데 역시 다르네. 시인은 시인이라는걸 인정하게 되버렸다. 나의 눈을 통해 내면속으로 들어간 나만의 추억 영상들을 오빈리라는 마을이 오버랩되며 살며시 드러내지는 나의 짧은 일기 같았다.

 

 일기의 기간은 2008년 11월 11일부터 2009년 11월 10일까지, 오빈리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의 겪어가는 박용하 시인의 일상들. 나의 기억들과 오버랩되는 글들이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다가온다.

 

 작가가 오빈리 들길을 걸으며 오빈저수지를 보았을때 대형을 이룬 한 때의 새들이 날아간다. 그때의 시간에 나는 어디엔가 있었고, 누군가와 있었을 것이고, 무슨 생각들을 했었고, 어떤 말들을 했었고, 잡히지도 않는 고민을 가득 안고 있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작가가 집에서 맥주캔을 들이킬때마다 나는 컴컴한 공기만 가득한 방문을 열어 하얀 스위치를 켜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라는 끝도 없는 질문들에 나를 정당화시키는 답변들을 찾아 뻔뻔한 고뇌를 했으리라.

 

 이 책은 분명 개인의 솔직한 일상이 다소곳이 담긴 일기가 맞다. 일기속에 참 많은 내용들이 있다. 박용하 시인이 읽었던 책, 만났던 사람, 술자리 횟수, 마셨던 맥주캔 숫자, 들었던 음악 등등.. 그리고 아내와 딸과 살아가는 모습. 솔직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세상에만 있을 것 같았던 시인의 세계가 친숙하게,친구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말술 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어찌나 캔맥주을 많이 마시는지... 읽는동안 내가 취하는 듯했다.

  

 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난 이 책을 읽고 일기를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까지는 솔직한 나의 것들을 꺼내놓는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조그만한 신비주의를 지양했던 그동안의 작은 자존심은 버리기로 했다. 이 책이 일기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줬을까? 지금은 의지충만이다. 살아온 날, 살아갈 날 많지도 않다라는 걸 받아들이고 매일 매일은 아니더라도 단 한줄 두줄을 꾸준히 드러내고 싶어졌다. 그래야 살아갈 날이 즐거울 듯하다.

 

 일기를 왜 쓰는데? 글을 왜 쓰는데?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박용하 시인과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과 마찬가지로 "저는 쓰고 싶어서 씁니다. 잊히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씁니다. 홀로 있기 위해 씁니다. 삶, 세계, 모든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롭기 때문에 씁니다. 삶의 그 모든 아름다움과 풍부함을 단어들로 표현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씁니다. 항상 갈 곳이 있는 것 같지만 마치 꿈속에서처럼 도저히 그 곳에 갈 수 없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씁니다. 도무지 행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씁니다. 행복하기 위해 씁니다."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씁니다라고 말할렵니다.

 

 오빈리 일기는 나에게 일기 쓰는게 두려운게 아니란 걸 전해줬다. "저녁때 빗방울 몇 점 땅바닥에 무늬만 냈다."/p136  단 한줄이지만 이 글 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감성적인 표현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두워지는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내가 지나쳐온 흙길에 내 발자국을 지워가는 무수한 동그란 무늬들과 홀로 걸어가는 쓸쓸한 내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참 많은 느낌을 전해준다. 짧은 내용들의 일기들이 대부분인데도 뭐가 가득 들어온다. 작가의 글에 대한 가치관이 맘에 든다. 알아먹기 쉽게 글을 써야한다는 거! 이리저리 빙빙꼬아 잘난척하는 책들은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단다. 그런 책들, 그런 글들, 널린게 그런 글들이잖아. 잘난 척 하기 바쁜 세상에게 통쾌한 외침이다. 짧고, 알아먹기 쉽게, 그리고 일기로 풀어나간 이 책이 어쩌면 이 시대의 문자들의 화려함에 저항하는 선구자가 아닐까? 난 그렇게 받아들인다.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하루만 더 빨리 일기를 적고, 한달만 더 일기를 담아낸 책이었더라면 하는 것뿐이다. 하루를 더 살아도, 한달을  더 살아도 변하지 않는 일상이지만 그 속엔 시간이 더해짐에 따라 기억이 남으니까 말이다. 그 기억 하나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뚜렷한 안내표지판이 될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꽤 즐거운 일기 훔쳐보기였음은 변함없다. 오빈리! 언젠가 한번 가보겠다. 그리고 내 일기! 제목 뭘로 정할까? 행복한 고민같다. 지금은 말이다. 혹시 먼 훗날에는 후회하지 않을까? 너무나도 소중한 기억, 꼭꼭 감추고 싶은 기억들마저 나만의 것이 아닌채로 인터넷에 버려지는 것이 아닐지...

 

오빈리 일기를 다 읽은 날, 나의 일기를 적어본다.

 

# 2010년 5월 16일 일요일

 

 가을 바람 쓸쓸이 불어오는 시골 들판길 버류정류소 간의 의자에 앉아 정겨운 사람들 가득 실어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싶습니다. 그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오지 않는 버스, 이미 지나가버린 버스임을 잘 알고 있지만, 이 곳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저를 반겨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피고 지는 다양한 꽃들의 향기와 숨소리를 만끽하며 가슴 깊숙히 잠들어 있는 눈물 흘리지 못하는 나의 가슴과 기나긴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살아야만 이곳에서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의 창가에 기대앉아 눈을 감아봅니다.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