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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김별아 지음, 오환 사진 / 좋은생각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대체 대상이 무엇일까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연인들의 사랑으로 크게 분류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생각해보지도 못한, 그리고 차마 잊고만 있었던 사랑의 다양함을 느낄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에세이라고 하면 삽화가 몇장 들어가거나 작가의 일상 사진들이 몇장 들어갈 뿐인데 여기서는 자동차 잡지 사진작가인 오환씨의 애절한 삶의 심도가 깊은 흑백사진들이 커다란 휴식을 더해준다. 그렇지 않아도 사진 많은 기행서적들을 좋아라하고 있고 에세이 장르를 좋아하고 있었으니 이 책은 처음부터 친밀하게 다가왔다.
사실 이 친밀함은 결과에 대한 표현이지 읽는 내내 가져온 진짜 친밀함은 김별아 작가의 감성적인 구절들이었다. 그동안 가슴주변을 빙빙 돌아다니며 온 육체를 쿡쿡 찔러왔던 감정들이 이 책의 매장마다 하나씩 시원하게 꺼내주었던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데도 세상에는 오늘도 마음 아픈 사람들이 넘친다. 한동안 나는 농담조로 사람들이 나를 약사여래의 현현인 줄 아나 보다는 턱없는 소리를 할 만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과거의 어떤 일이나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그것을 치유하지 못해 마음속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가지고 있었다.....나 역시 아픈 마음과, 마음의 구석자리 어딘가에서 울고 있는 겁먹은 어린아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p39
가장 먼저 꺼내본 내안의 그 무엇은 어린아이였다. 울다 울다 더이상 쏟을 눈물이 없는 눈이 퉁퉁부은 아이 말이다. 김별아 작가는 이 어린아이에게 내버려두는 법으로 달랜다. 불안을 느끼면 그냥 느끼고, 어두운 곳으로 데리고 가면, 그냥 따라가서 거기 잠시 머물면 된다고 한다. 그것도 모른채 나는 그곳에 가지 않을려고 울며 버티고 주저 앉아만 있었으니 할수 있었던건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문체와 사진에서 더 나아가 에세이 장르라는 개인적인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각 파트의 소분류의 주제마다 가장 어울리는 멋진 시를 만나게 한 것 또한, 책을 읽는 또 다른 맛이다. 그 중에서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에서 비오는 날이라는 김수열씨의 시가 인상적이다.
수학 시험 볼 땐데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아, 짱나
배 둘레만 알면 됐지
도형의 둘레랑 나랑
뭔 상관?
창밖엔 운수 좋은 날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틀렸다, 틀렸다 하면서
사선으로 내리는 거에요
아, 졸라
그런데요, 운동장 물웅덩이 보니까
맞았다, 맞았다 하면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게 아니겠어요?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다 동그라미예요
다
선생님,
내 답안지가요
물웅덩이였음 졸라 좋겠어요
아, 진짜
<김수열 / 비오는 날>
그동안 이해하기 어렵고 도대체 뭘 비유하는지 찾아내기 힘든 갑갑한 시들만을 많이 접해왔기에 이 시를 읽은 직후에는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는 선입견이 행차하여 저속한 동시로 결론 내려는 찰나,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울고 있는 내안의 아이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고 나니 몸 또한 가벼워졌다.
내마음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떤 날엔, 타인의 마음을 훔쳐다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생각들이 내 가슴과 타협하기 힘들 시점에서는 버릇처럼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하겠지라는 상상속에서 한 편의 단막극을 만들어본다. 보통 그 결말은 반대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단 한번 일치하는 상황이 찾아오면 그 짜릿함으로 빛깔 없는 세상을 다시 밝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걸어온 일상들을 되돌아 보면서 여유를 찾아가기에는 지금 내걸음이 너무 빠르다. 잠시 걸음을 멈춰 이 에세이에서 전하는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을 만큼만 내 것을 사랑하며 챙겨가는 부지런함을 내 눈을 통해 가슴으로 들여보낸다. 살아가보자라는 의욕이 가슴속에서 온몸으로 뻗쳐 바닥을 쳐본다.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라는 말을 난 믿고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