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리머니
조우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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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세리머니 >

▫️저자 : 조우리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50년 가까이 함께 산 두 여자가 부부가 되기 위해 필요한게 뭔지 아세요?"

이 강렬하고도 애처로운 질문이 담긴 문장이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였다. 단지 한 문장이지만, 그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감정이 너무나 격정적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 작은 도시 하주시에서 일하는 벽장 레즈비언 공무원 ‘도선미’와 신규 레즈비언 공무원 ‘이가경’은 정부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레즈비언 부부에게 혼인관계증명서를 발급한다. 어느새 혼인신고를 마친 레즈비언은 101쌍에 이르고, 알려진 관광지도 지역 특산품도 없는 하주시는 레즈비언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지역으로 떠오른다.
_출판사 책 소개

책 소개를 보면서 이 책의 장르가 판타지인 건가 잠시 생각했었는데, 막상 들여다본 그 세상은 조금 더 생생하게 현실과 닿아있었다.

🔖아무리 힘주어 눈을 감아도, 눈꺼풀 밖의 빛이 사라지진 않는다. 어둠 너머에서 일렁이는 빛을 언제까지나 무시할 수도 없다. 선미는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걸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깨달았다. 고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는 건 작은 티끌 하나로도 충분했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대신 어른에게 말할 때는 엄마도 같이 있을게. 엄마가 네 보호자니까."
가경은 엄마가 예전부터 준비해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에게도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있는건 아닐까. 그래서 남겨진 엄마는 다음을 고민하고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엄마와 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어렴풋한 예감이 들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경은 법이 얼마나 완고한 고집불통인지 알게 되었다. 몇 개의 단어만 바꾸면 훨씬 더 좋아질 문장들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거대한 성벽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살아갈수록 맞서 싸우고 물리칠 대상보다 지켜야 할 존재가 더 많아졌다. 아무리 붙잡으려 애써도 사라지는 사람이 계속 생겼다.

🔖"선택할 수 있다는 거,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권력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잖아."

🔖바깥은 몰라도 내부가 이토록 조용한 건 다행이라기 보단 오히려 화가나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겐 온 생애에 걸쳐 간절했던 일이 어디에선가는 무관심 속에 묻힐 뿐이라니.

💬 자신의 내밀한 한 부분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두렵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걸, 어린 시절의 무수한 추억을 공유했던 지인들 곁을 모두 떠나버리고 나서야 알게 된 선미가 안타까웠다.

"그거면 돼요."
라고 기도하듯 이야기하는 그들의 중얼거림이 마음에 남아 아린 이야기이기도 했다.
또한, 그걸로 안되겠어요.
"모자라요."라며 기도하는 선미의 당연한 욕구와 욕망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응원하게 되는, 희망가 같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저 어떤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졌을 뿐'이라는 문장에서 먹먹한 아쉬움과 뜻 모를 죄스러움이 더해진다.
함께 화를 내고 싶어졌다.
억울해서 아무나 붙들고 막 욕하고 싶다던 그녀들의 울분이 책을 덮은 이후에도 종종 생각나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고.

마지막에는 그 고독과 두려움 안에서 꺼내어진 용기에 승리의 세리머니를 함께 했지만 말이다.

책 여기저기에 묻어 있는 질문과 질문의 답은 결국엔 하나였다.
아주 평범한 존재의 이유이자 증거,
'사랑'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사회이길.
(최소한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수같은 이들의 합리화에 빗대는 이들의 주장이 더 크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아니길 바란다.)

✍️ 왠지 어딘가에서 일어났을 법한, 꽤나 현실적인 이야기라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 이 이야기의 저자 조우리 작가님은 여성, 퀴어,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신다.
처음 그의 작품을 만난 건 리디북스의 우주라이크소설 < 미요와 요미 >였는데 독특한 시선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고민과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다고 기억한다.

이 이야기 역시 문장이나 단어들이 과하지 않고 다소 건조하게 느껴지면서도 감정이나 주제 전달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

담담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가로 기억할 듯싶다. 그가 앞으로 할 다른 이야기들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적인 의견을 담아 적은 서평입니다.>

#오늘의세리머니 #조우리 #위즈덤하우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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