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죽음
홍지 지음, 융 그림 / 부암게스트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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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나이 20대, 한창 건강하고 활동적일 시기이다. 그런 내가 죽음을 떠올린다면?

100% 사람들은 자살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죽음을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나는 초고령화를 넘어서 초초고령화 지역에 산다. 그곳에서 죽음의 기준은 다르다.

겨울철 갑자기 사망하는 노인분들,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요양병원

며칠 안에 돌아가실 것 같은 분도 10년 이상 살다가 정신이 온전치 못함에도 산소호흡기로 증존자가 태어나고도 사시는 노인들의 소식이 간간이 들린다.

그런가 하면 100일도 체 안 되어서 죽은 신생아, 2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목격한 4중 충돌 사고

50cm도 안 되는 거리차이로 비겨간 죽음. 죽음은 생각보다 멀고도 가까웠다.


그래서 젊어도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다. 

단순히 멀다는 이유로 준비하지 않다가는 가족들에게 고생만 시키기 때문이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이라도 죽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만약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의 죽음>과 같은 책은 소중하다. 

우리가 평소에 마주하지 않는 죽음에 부드럽지만 순간에 깊숙히 파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질문의 범위는 나란 개인의 죽음에서부터 미래의 죽음까지 넓게 퍼져 있다.

그중 몇 가지 질문을 같이 보자.



죽은 후에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장례식에 오는 손님이라고 했다.

만약 그 사람이 좋은 행실을 보였다면 사람이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없다.

이는 나란 개인을 포함해서 나의 친구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내가 그에게 좋은 됨됨이를 보였기 때문에 질문에서처럼 아이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 됨됨이와 다르게 친구와 추억이 그리 많지 않다면? 있어도 학창시절 뿐이면?

평소에 소중하게 내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현실에서 위와 같은 상황에 마주한다면 매우 어색할 것이다.

그래서 <질문의 죽음>이 존재한다. 정말 별의별 상황을 제시해주어서 어떠한 죽음에도 당황하지 않게 단련시켜 주는 기분이다. 동시에 삶의 가치도 전한다.



인생을 살면서 고통은 누구나 겪는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에 불평만 할 뿐 바꿀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나는 위의 질문에 남들과 다른 고통, 다름을 성장시킬 때 겪는 고통,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는 고통을 답했다. 불평이었다. 하지만 고통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키우면, 완전한 이해를 바라지 않고 인정하면 나의 세 고통은 사라진다.

결국 현재 삶이 고통이더라도 내가 바뀌면 바뀐다.

이렇게 불쑥 생각하지도 않던 곳에서 죽음 속 삶의 가치를 전한다.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원인을 꼭 집어주면서 행동을 하도록 추가 질문을 던진다.

죽음에 부드럽게 고개를 돌리도록 이끄며 샹냥한 질문으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더 없이 매력적인 <질문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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