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반란 - 갈라 드레스/ 뉴잉글랜드 수녀/ 엇나간 선행 얼리퍼플오키드 3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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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반란>은 페미니즘의 격동기인 20세기에 쓰여졌다.

한창 혼란스러운 시기에 쓰여진 이 책은 얼핏 보면 20세기 여성들의 평범한 삶을 그린 듯이 보인다. 그러나 잘 살펴 보면 페미니즘적이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내용이 많다.

지금부터 기억에 남는 3가지를 소개한다.


엄마의 반란

사라 펜은 애덤 펜과 결혼했다. 

남편이 새 집을 지어준다고 했지만 그곳에 창고가 들어온다면 누가 좋을까?

새로운 집이라는 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체 40년의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결혼할 때가 되었는데도 집은 지어지지 않는다.

사라 펜은 결국 행동으로 옮겼다.

새로 지은 창고로 이사를 간 것이다. 돌아온 남편 애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결혼은 계약이고, 가정의 중심은 사라였기 때문이다.

애덤은 결혼을 하면 해야할 일(집 짓기)를 하지 않았다.

사라가 가정의 중심이었기에 아이들은 사라의 의견을 따랐다.


뉴잉글랜드 수녀

루이자는 15년이나 약혼자를 기다렸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루이자는 결혼이 최선인 줄 알았고 조를 오래 기다렸기에 결혼을 할 생각을 했지만

이내 그녀의 삶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자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면 그녀가 좋아하는 허브티, 자수, 동화 같은 집이 사라진다.

자신이 아끼는 개도 안전하게 지낼 수 없다.

결혼을 해서 자신의 삶이 없어지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택했다.

결혼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는지 다시 한 번 물어야 한다.

결혼 후 자신만의 삶이 사라져서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최선도 최고의 삶도 아니기 때문이다.


엇나간 선행

해리엇과 샤럿은 허름한 집에서 노년을 지내고 있었다.

이웃들이 선행을 베풀어 요양원에 보내기 전까지 말이다.

그녀들은 왜 편한 요양원에서 원래 삶으로 돌아온 것일까?

이웃들이 그녀들을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단촐하고 허름한 집에서 소소한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웃들은 그녀들의 만족감과 행복함을 고려하지 않은 체 자신들의 의견만 강요했다.

우리는 선행을 베풀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내가 하는 선행이 과연 그들에게 선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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