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
나혜석.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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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한국의 모습을 본 적 있다. 길게 땋은 머리로 한복을 입고 걸어 다니는 여성은 드라마에서 보던 조선시대 여성과 같았다. 일제강점기에 살던 여성이 한국과 일본, 중국을 넘어 여행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시베리아를 건너 유럽을 여행한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국 여성 나혜석과 일본 여성 후미코.

나혜석은 식민지 한국에서 살았지만 1등석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했고 (1927년), 후미코는 돈이 없어 3등석 열차를 타고 여행을 했다(1929년). 나혜석은 여행 이후 <구미 여행기>를, 후미코는 <삼등여행기>를 발표했다. 기차와 배를 타고 파리, 런던, 스위스, 뉴욕 등 전 세계를 돌아보고 온 그들의 글을 통해 1920년대의 유럽과 미국이 어떠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혜석은 남편을 따라 나선 여정이라 여행이 고급스러웠다. 1등석에서 주로 외교를 담당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여행을 했다. 여행 자체가 주는 힘듦은 있었으나 그다지 큰 고생을 하지 않은 듯 느껴졌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삶을 살아가던 시대에 여성이 아이들과 시부모를 떠나 세계 일주를 간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 자체로 나혜석은 시대를 뛰어넘는 의식을 가진 여성이었다.


나혜석의 구미 여행기는 그냥 어디를 다녀왔다는 기록의 글이었고, 개인적인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았다. 가끔씩 강조를 하는 부분을 보면 미술과 여성이었다.


고야의 묘를 방문하여,

"그는 죽었다. 그러나 살았다. 그는 없다 그러나 그의 걸작은 무수히 있다. 나는 이 묘를 보고 그 위의 걸작을 볼 때 이상이 커졌다. 부러워 나도 가능성이 있을 듯했다. 처음이요, 또 최후로 보는 내 발길은 좀처럼 돌아서지를 않았다. 내가 이같이 감응해 보기는 전후에 없었다."라는 글을 남겼다. 미술가로 성장하고픈 욕구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하기에 나혜석은 파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녀는 여행 동안 긴 머리를 자르고 단발머리를 했으며 이후에도 단발을 고수하고 싶어 했으나 한국에서 결국 다시 머리를 길렀다. 그녀가 꿈꾸는 이상과 현실은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혜석이 파리를 깊이 사랑했던 것과는 달리 후미코는 파리에서 첫 일주일 잠만 잤다. 밝고 너른 거리의 파리를 상상하고 목숨을 걸고 왔지만, 어두침침한 파리에 적잖이 실망한 듯 보였다. 파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살다 보니 나중에는 많은 정이 들었고, 이후의 글에는 파리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보였다.


후미코의 여행 글에는 3등석 기차를 타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어서 구미 여행기보다 좀 더 재미있다. 일본에서 발표한 책 한 권이 성공하자 그 돈으로 세계 여행을 시작했다. 얼마 안되는 돈이었기에 여행 가는 궁상맞고 힘들었지만, 독자들에게는 깊은 여운을 주는 스토리들이 여기저기에 산재해있었다.


후미코는 파리의 카페에서 길고 딱딱하지만 싸고 맛있는 빵을 먹는 것을 즐겼다. 아마도 바게트 빵인 것 같았다. 돈이 없어 실크로 된 기모노를 전당포에 맡기기도 했지만 게다를 신고 파리 거리를 씩씩하게 걸어 다녔다. 호기심 많은 후미코는 여행을 정말 좋아했다. 나와 다른 시대에 살아간 여성이 세계 여행에 빠진 모습을 글로 읽으니 그녀의 용감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후미코는 에필로그에서 여행에 항상 갈증이 있는 자신을 고백했다.

"나에게는 여행을 가서 객지의 허망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찾아내는 즐거움이야말로 그리운 천국이기에 여행벽은 점점 심해집니다. 내 영혼은 애수의 소용돌이 안에서만 생기가 넘치는 모양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도 이젠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행만이 내 영혼의 휴식처가 되는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개인적인 의견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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