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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 -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가스라이팅의 모든 것
신고은 지음 / 샘터사 / 2022년 1월
평점 :
<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는 친밀한 척 다가오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다가오는 가스라이팅에 관한 책이다. 1944년 영화 <가스등>에서 사기꾼 남편이 주인공 폴라를 의도적으로 속일 때 가스등이 희미해졌다. 그 영화에서 유래한 단어가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책을 덮으며 내가 '가스 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젊은 시절 알았더라면, 내 삶을 지배하려고 했던 가스라이터들에게서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설득하며 가스라이터가 되는 순간을 안전하게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스라이팅'에 대해 배우게되면 자신이 가스라이티, 즉 피해자가 된 순간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나를 가스라이팅 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마음 속으로 욕을 날린다. 조남주의 '현남오빠에게'라는 소설에서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신을 가스라이팅한 현남오빠에게 시원하게 욕을 날리듯이.
<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를 읽으며, 나도 가스라이터가 될 수 있다는 믿기 힘든 사실을 깨달았다. 누구나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마 내가...... 가만히 돌아보니... 그런 적 있었다.

그렇다면, '가스 라이팅'이란 무엇일까요?
이 책의 저자 '신고은'씨에 따르면, 상황이나 심리를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행위라고 한다. 가해자는 가스라이터, 피해자는 가스라이티가 된다.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가장 흔하게 가스라이팅이 일어나는 경우는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생각되었다. Dominant Parenting, 지배적 유형의 부모가 이런 일을 자주 행하는 것 같다. 부모의 이상에 자녀를 맞추기 위해 상황을 통제하고, 열등감이나 죄책감을 심어주어 심리적으로 부모 말을 듣게 하는 행위. "넌 큰 아들이잖아.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라며 큰 아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부모가 원하는대로 조종하는 한국의 엄마들. "넌 무조건 엄마가 시키는대로 해. 학원을 가든 과외를 하든 엄마가 하라는대로 하면 되는거야. 그러면 너는 성공할 수 있어. "라며 아이의 선택권을 아예 박탈하고 엄마말만 듣고 움직이는 아이로 만들어버리는 부모들도 모두 가스라이터들이다.
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의 행동이 왜 가스라이팅이 될까? 자녀들이 부모들의 통제로 인해 감정적으로 흔들리면서 불편해지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를 하는 부모에게서 폭력을 당하면서도 부모의 말만 따르는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바로 가스라이팅의 결과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자라난 자녀는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서 가스라이팅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훈련되어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가스라이터가 되어 다른 사람을 조종하기도 한다.
데이트 폭력의 상황을 뉴스에서 접하면, 측은한 마음 끝에 왜 저렇게 바보같이 당하냐며 피해자를 답답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황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런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 가스라이팅은 한 번에 훅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씩 슬금슬금 들어와서 조금씩 강도가 올라간다. 자신감을 잃고 이게 뭔가하고 혼돈스러워하며 No라는 말을 하기 전에 교활한 가스라이터는 조금씩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스라이티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자신의 이야기만 듣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누구도 그 상황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서커스를 위해 훈련된 코끼리가 생각났다. 생포된 후 발에 사슬이 묶여있어서 절대로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코끼리는 나중에 사슬을 빼도 도망가지 않는다. 사람도 코끼리도 가스라이티가 되었을 때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주변에 누군가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면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겨서는 안된다. 그 사람이 당하고 있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도와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계속 교활한 자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는 가스라이팅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 영화와 소설을 사례로 들어 설명하여 이해가 잘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도 돌아보면 직장 상사나 학교 선배들로 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그로인해 많이 불편해하고 속상했던 순간들이 대부분 이십대 때였다. 사람들의 교묘한 가스라이팅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 또한 그런 상황에 자신이 빠지고 있다면 과감히 끊어낼 수 있는 용기를 기르기 위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2022년 봄여름 물방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샘터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