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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내맹쿠로 살지 마래이 - 최종렬 사회학 소설
최종렬 지음 / 피엔에이월드(PNA World) / 2021년 12월
평점 :
문학적 소설이 아닌 '사회학 소설'이라는 장르는 처음으로 접해 보았다. 문화사회학자이며 사회학과 교수인 이 책의 저자는 경북에 사는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논문을 쓰려다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학 소설'로 자료들을 정리하여 발표했다.
"사회학이 전문가들의 '가두리 잔치'가 되어선 안 된다. 오히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동행'이어야 한다." (여는글 13쪽에서)
한국 여성 3대의 삶이라는 주제는 이제 더 이상 신선한 주제로 다가오지 않지만, 사회학 소설이라는 형식의 독특함이 궁금증을 일으켜 이 책을 선택했고, 실제로도 색다른 책 읽기 경험을 했다. 독자들에게 친밀성을 주기 위해 소설 형식으로 글을 썼으나 사회학적인 언어 사용을 위해 학술대회 형식으로 글을 나열했기 때문이다. 이런 작가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밥, 일, 사랑이라는 세 개의 주제로 세 개의 세션을 진행하는 학술 대회로 1세션마다 주제의 소개와 인터뷰했던 내용을 토대로 한 소설 그리고 주제 발표에 대한 토론의 형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소설도 인터뷰를 통한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것이라 현실적이었고, 울화통이 터지는 이야기지만 읽기에 재미있었다., 그 이후 진행되는 토론 파트도 상당히 흥미로왔다. 소설로 주제 발표를 한 사람의 사회학적 설명에 대해 반론하는 형태의 토론을 진행하는데, 주고받는 대화의 긴장감이 상당하여 마치 진짜 토론에 참여하는 듯했다.
밥, 일, 사랑은 한국 여성들이 할머니- 어머니- 딸이라는 3대로 이어지는 삶을 관통하는 주제다. 사랑으로 결혼했든 아니든, 부계 가족의 대를 잇기 위해 출산의 고통을 감당하고, 시댁 식구들을 온전히 돌보느라 몸 고생 마음고생하고, 돌봄 노동뿐 아니라 제대로 가장 역할을 못했던 남편을 대신하여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며 노동의 역할까지 담당했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 그런 어머니를 숭고하게 만들고 자신은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아들. 그런 아들을 오빠나 남동생으로 두고 그들의 밥을 차려주며 살아온 딸, 그런 딸에게 "니는 내 맹쿠로 살지 마래이."라고 하면서도 결국 또 아들을 위해 딸을 희생시키는 엄마. 돌고 도는 여성 3대의 복제한 듯한 삶의 연결 고리를 끊어낼 방법에 대한 토론은 가부장적인 한국에서 여성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주제 발표자는 남자 사회학 교수, 토론 참여자는 여성 페미니스트나 여성학 전문가들. 이들의 관점은 내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시각까지 바라보고 문제를 제기하여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는 효는 낮은 노동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여성에게 떠맡겨진 것이라고 했고, 집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여성에게 이런 돌봄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나 아이 돌보미와 같은 직업도 결국 그런 맥락에서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고 있으며, 저임금의 돌봄 노동에 처한 여성들의 노동 환경 변화를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려 신경 쓰지 않는 것도 결국은 가부장적인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냥 소설로만 끝났다면 마음만 아팠을 이야기들을 토론이라는 형식으로 사회학적 언어들을 가르쳐주고, 각자의 대립하는 다른 관점들을 보여주어 생각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괜찮은 시도의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토론 파트는 사회학의 학술 대회이다 보니 약간 어려운 부분도 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