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심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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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적 호기심을 드러내는 큰 눈과 오뚝한 코, 짧은 머리의 매력적인 '프랑수아즈 사강'의 사진이 하늘색 바탕에 새겨져 있는 책. 미발표 유작 소설 [마음의 심연]을 직접 마주하면 사강의 눈빛과 어울리는 책의 디자인이 독서 욕구를 자극한다. 책 뒤의 가로쓰기 된 문구도 개성 있고 예뻐서 책의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샌드위치를 만들 때 신선한 재료들의 어울림이 샌드위치의 특성과 맛을 좌우하듯이 소설의 성공은 캐릭터들의 개성이 스토리와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마음의 심연]에는 스스로를 정상이라 여기지만 독자들의 눈에는 비정상적인 가족들과 정신병원에 가두어져 비정상이라 여겨지지만 정상인이 되는 길을 찾아가는 남자 주인공 뤼도빅이 등장한다.

 

사강이 창조해낸 캐릭터들은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나쁜 인간은 아닌데 공감할 수 없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에 화가 나는데, 그럼에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윤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용납할 수 없는 운명적 사랑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설마 저 둘이 사랑할까?" 의심하다가 저들의 사랑이 발각될 것 같을 때는 마음이 조마조마 해진다.

 

돈과 성공으로 교만한 아버지 앙리, 뤼도빅의 새엄마로 들어와 부의 풍족함을 누리지만 몸이 아파서 삶다운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상드라, 뤼도빅의 사랑을 받고 돈에 눈멀어 결혼한 냉혈한 아내 마리로르 그리고 상드라의 무능력한 동생 필립. 이들은 바로크 분위기의 고급대저택에서 우스꽝스럽고 저급하지만 비싼 인테리어를 하고 부를 과시하며 살아간다.

 

함께 모여 밥을 먹고 TV를 보지만 공감을 경험하지 못하며, 서로를 경멸하고 헐뜯는다. 오로지 돈에 대한 열망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었다. 뤼도빅과 마리로르는 젊은 신혼부부일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운전한 아내는 거의 안 다쳤지만 뤼도빅은 죽을 것이라 예상될만큼 다쳤다.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지만 정신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2년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 그를 병문안 온 가족들은 형식상 방문했을 뿐 아무도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오로지 마리로르의 엄마인 파니만이 사위의 불행에 슬퍼한다.

 

아버지 앙리의 결단으로 퇴원하여 집에서 치료를 받게 되는 뤼도빅은 가족들로부터 존재 자체를 무시당한다. 아내 마리로르는 그를 바보 취급 하고 폭언을 내뱉는다. 그는 죽음 근처까지 가서 살아난 운 좋은 사람이지만 가족들에게는 돈만 축내고 있는 멍청이였다.

 

그런 아들이 불쌍하여 아버지는 아들의 건재함을 알릴 파티를 계획하고 장모 파니에게 그 파티를 맡긴다. 파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예의 있는 여성으로 그 집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내뿜는 밝고 긍정적인 기운에 아버지 앙리와 사위 뤼도빅 둘 다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도 사위도 아내가 있는 사람들인데 둘 다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강의 상상의 폭의 진자가 너무 커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이틴 로맨스 같은 자극적인 스토리로 독자를 끌고 가지는 않는다. 사랑은 자신감을 잃은 자의 마음을 서서히 회복시켰고 오래된 습관 같던 가정을 스스로 끊어내는 결단을 하게도 했다.

 

등장인물을 욕하다가 각자의 약함이 드러날 때는 잠시 동정도 했다가 말도 안 되는 사랑에 위태로움을 느꼈다가 결론도 없이 소설은 끝이 나버렸다.

 

유작이라 결말을 못 쓴 것인지 처음부터 열린 결말인지는 알 수 없다. 결말을 상상할 때 나는 왜 말도 안 되는 그 사랑에 마음이 기우는지 모르겠다.

 

가독성 좋은 소설이라 금방 끝을 내었지만 사강이 왜 이런 설정을 했고 마음을 불편하게 한 등장인물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생각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문학늠 불편한 설정을 보며 나의 내면의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나를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마음의 심연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곳에 숨겨져 있던 본능의 끌림이 이렇게도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린 사랑은 소설이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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