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1년생의 비거니즘.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살고 싶다,>라는 에세이를 통해 만난 저자 전범선은 똑똑한 진보주의자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민사고를 나와 국제 변호사가 되기 위해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했지만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는 한량이 되어 버린 영재다. 글을 쓰며 '양반들'이라는 보컬에서 노래를 한다.

 


그는 조국의 딸 조민에 관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특목고를 다닌 사람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댓글로 고생하는 조민이 처음에는 불쌍하게 여겨졌다. 자신은 특목고에서 부잣집 부모를 둔 아이들의 특권 의식에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그들의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지라 사람들의 관심이 지나치다고 여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특권을 누린 삶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공정한 사회와 능력주의에 대해 사회가 너무 과도하게 가치를 두고 있고, 자신은 능력주의를 부르짖는 공정한 사회 보다 사랑과 평화가 있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타자의 불안과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사랑의 능력자들 때문이기에 자신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갈 것이라고 했고, 나는 그의 시선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요즘 MZ 세대가 비건이 되는 비율이 높은 이유를 전범선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기후 위기를 일으킨 장본인들은 약속만 하지 지키지 않는다고, 이웃집 불구경하는 태도로 빈말만 하니 결국 기후 위기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MZ 세대라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들이 패스트패션을 버리고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나 비거니즘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같다.

 

 

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육고기는 안 먹고 생선은 먹는 사람)으로 몇 년 동안 살아왔지만 올해부터 플렉시테리언(상황에 따라 가끔씩 고기를 먹는 사람)이 되었다. 저자는 이런 라벨링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비거니즘'을 라이프 스타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비거니즘'은 정치사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비건' 아니면 '비건지향'이지 락토, 페스코 , 오보, 플렉시테리언과 같은 구별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나 자신을 '비건지향'이라고 표현하기러 했다.

 


 


 

 


중년은 보통 건강을 위해 자연식물식을 하며 자연스럽게 채식의 삶으로 진입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젊은 비건은 그 이유가 좀 다르다. '비거니즘'의 목표는 동물해방이다. 시민전쟁전 백인들은 인종 차별을 당연시여겨 흑인들을 동물보다 더 못한 종으로 대우했다. 지금 인간이 동물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동물을 대하는 것처럼. 그는 지구를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종으로 동물과 인간은 평등하므로 살생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노예제도가 비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져 폐지되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동물을 학살하는 폭력도 사라질 것이라고 그는 소망했다. 그와함께 그는 패미니즘에 대해서도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은 살림으로 하나된다. 모두 생존과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비거니즘은 우리의 밥상을 죽임이 아닌 살림의 먹거리로 채우는 것이 시작이다. 페미니즘은 남성중심 사회가 여성의 몫으로 할당하고 폄하했던 살림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육식주의와 남성우선주의는 이성의 언어로 지어진 철옹성 위에서 함께 군림한다. 둘은 동시에 해체할 수 밖에 없다." p35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에 관한 그의 시선은 상당히 진보적인 것이라 그의 다음 행보들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저자는 디지털 문명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이보그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아이폰을 잠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간이니 사이보그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글에 내 삶을 돌아보니... 사이보그가 맞는것 같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는 사이보그들은 인스타와 같은 소셜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많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짬을 내어 자아 성찰하는 시간을 갖지않으면 질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며, 디지털 없는 삶도 정기적으로 도전해보길 권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곳은 산청이었다. 10일간 여친과 사이보그를 포기하고 흙집에서 살면서 글을 썼다. 그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떠올렸고, 초기의 수렵 채집인으로 살았던 인간의 삶도 경험해보았다. 수세식 변기가 없는 곳에서 통에 큰 일을 보고 스스로 그 똥을 흙에 묻는 것과 같은 일도 해보면서 그는 우리 생활의 편함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헌신이나 희생이 있음을 깨달았다. 학교 다닐때 편하게 먹던 밥은 엄마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사회가 돌아가는 체계속에는 불공정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필수적인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고생이 있는 것이다. 편안함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삶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겼는데 , 젊은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것도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편함을 위해 누군가의 헌신을 당연히 여기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