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그리운 것은 시가 된다 - 서정윤의 어떤 위안
서정윤 지음 / 마음시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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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젊은 시절에 `홀로서기`라는 시는 폭풍처럼 삶에 들어왔었다. 시가 담은 언어가 가슴에 와서 박히는 순간을 경험했던 특별한 시와의 만남,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아마도 젊은 날의 열정이 소망해 온 낭만이 시의 마력에 더 쉽게 빠져들게 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잊을 수 없던 저 문장. 연애를 할 때도, 결혼을 결심했을 때도 이 시의 문구는 늘 함께했었다. 물론 친구 간의 우정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실제로 홀로 선 둘이 함께 살아가는 삶이 더 현명하고 좋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더 느끼게 되었다. 홀로서기의 시인인 서정윤 씨가 새로운 시집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추억을 소환했고, 그의 삶이 이제 어떤 노래를 하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이번 시집 <모든 그리운 것은 시가 된다>에서는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많이 담은 듯했고, 그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시들이 많았다. 부동산 공화국이 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불로소득으로 자녀를 금수저로 만들고 그들은 승승장구하는데, 자식에게 땅 한 평 주지 못한 부모가 갖게되는 한탄이 시의 곳곳에 나타나 있었다. 그의 시 '미안하다'를 읽으며 한국의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처럼 젊은 세대가 살아가기 힘든 시기도 없었다. 시에서처럼 험난한 파도를 헤쳐가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거름을 주지 못해 마음 아파하는 부모들이 읽으면 정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안하다


봄꽃이 한창 피어나는데

집 한 채 땅 한평 물려주지 못한

아들 딸아 미안하다

하늘 높이

너무 많은 집의 구멍들이 있는데

우리 집은 없어

이사를 너무 자주 다녔다

다람쥐 박새 직박구리 삐쭉새까지

초본을 떼면

석 장이 넘는 전 주소란으로

동사무소 직원에게 창피했다


험난한 파도 헤치고 살아야 하는

너희에게 뭔가 조그마한

거름이라도 되어주고 싶은데

나의 살과 뼈는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

그래서 정말 미안하고 미안하다

아버지라서 미안하다




그의 또 다른 시 <이런 일>에서는 더욱 더 강경한 목소리로 부동산으로 돈 버는 건물주를 비판했다. '시인은 비꼬는 것도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시를 읽었고 속 시원함을 느꼈다. 자영업자로 열심히 일을 했지만 비싼 월세를 건물주에게 바쳐야 하는 현실을 '죽 쒀서 개 줬습니다'라고 했다. 죽 쓰느라 땀 흘리며 고생한 손은 쳐다보지도 않고 건물주인 개는 죽에만 관심을 보인다며 공짜만 좋아하는 염치없는 개로 표현했다. 결국 건물주만 배부른 세상을 만들었다는 말로 마무리한 시를 읽으며 짧고 명료하게 우리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시의 언어로 건물주를 개로 표현한 것에 마음이 확 트여지는 기분이 들었고, 비판의 시각을 리듬을 담아 은유로 표현한 시가 사이다 같을 수 있다는 것에서 시의 또다른 매력을 느꼈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의 사랑에 관한 철학이 노래로 잘 표현되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부부'라는 시가 마음에 들었다. 가로와 세로가 만나서 함께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삶에 관한 시가 정말 부부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홀로서기처럼 각자의 스타일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가로와 세로가 부부가 되어 일어서기도 하고 다독거리기도 하다가 꽃과 같은 자식을 낳아 성장시키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부부의 삶. 부부가 원래부터 한 몸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생이 다하는 순간이 된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부부라는 시는 이번 시집에서 내게 가장 많은 여운을 주며 생각에 잠기게 했던 시였다.



부부


가로가 세로에게 말했다

다리 아프지 않냐고

잠시 앉으라고

세로는 높은 데서 보니

멀리 볼 수 있어 좋다고 대답한다

가로 없는 세로는 비틀거리고

세로는 가로를 만나 비로소

일어설 수 있다

세로는 가로의 믿음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가진 길이가 짧아도

마음 맞으면 버틸 수 있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푸르게 변해

점으로 태어난 꽃을

선으로 키운다

가로세로는 서로 한 몸이었나 보다

알고 나니

나뭇잎이 다 떨어진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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