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살아갑니다, 지금 이곳에서 - 생명과 사랑을 찾아 전 세계로 떠난 11명 글로벌협력의사들의 이야기
글로벌협력의사 11인 지음 / 꽃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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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사라면 빈민국의 환자를 위해 의료 봉사 하러 타국에 갈 수 있을까?"


젊었을때라면 뜨거운 심장의 소리를 따랐을 수도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다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에 의료봉사를 떠나는 의사들이 나오면 괴짜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과연 의사들은 어떤 맘으로 의료 봉사를 떠날까?

 

글로벌 협력의사 11인은 한국 의사를 필요로 하는 다양한 많은 나라에 가서 일을 했다.

90년대에는 군역을 대신하여 해외 의료 봉사를 가기도 했었지만 폐지되었다. 최근 몇년간 의료 봉사를 가는 분들 중에는 중년도 꽤나 있었다.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도 젊은 날 다녀왔던 의료 봉사의 추억에 다시 한 번 봉사를 떠난 경우다. 좋은 시설의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살아가지만 바쁘고 정해진 삶에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고, 뭔가 더 보람된 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을어서 결단을 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KOICA를 통해 의료 봉사 가는 일은 원하면 다 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어보니 2016년부터 새롭게 진행되는 파견 프로그램은 경쟁률이 꽤나 높아서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하고 지원해야 했다. 서양 의학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전통 한의학을 원하는 곳도 있었다. 글로벌 협력의사 11인이 주로 하는 일은 당연히 그 지역의 환자를 돌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지역의 의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강좌나 워크샵을 열기도 하고 함께 연구하는 일도 했다. 또한 선진 기술을 전수하는 업무도 큰 역할이었다.

 

의사 선생님들이 현지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진료를 하려면 환자랑도 간호사나 다른 동료 의사랑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의사정도면 영어가 척척 되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의사소통을 하는 것과 전문적인 일을 행하는데 필요한 영어의 수준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게다가 현지어가 안 되면 결국 환자들 진료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자신의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진료를 보는 일은 언어로 인해 그리고 문화적 차이로 인해 힘들었다고 했다.

 

개발도상국 국가의 병원에 복강경 수술 기구와 같은 선진 의료장비가 기부되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놀랍게도 그 기계들은 창고에 박혀 있다고 한다. 사용법을 몰라서이기도 하고 의료 기기 주변 용품 구입 및 수술 관련 업무의 복잡한 행정절차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지 의사들도 그들의 높은 자존심때문에 한국의 의사와의 협업에 소극적이었고 새로운 시술법을 받아들이는 변화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협력의사 11인은 그런 기계를 세팅하고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세우며 그들을 도우려 했고 결국 그들이 스스로 복강경 수술을 하게 했다고 한다.

 

 

볼리비아의 앨알토지역에는 꼬레아 시립병원이 있다. 여기로 출근하는 의사는 참 좋았을 것 같다. 평생 사는 것이 아니고 2년 정도 지내게 되는데 출근 길이 여행가는 길 같다. 병원이 해발 4000m에 있어서   '텔레페리코'를 타야만 했다. 도착하면 10분정도 고산증을 앓아야 할 정도로 높은 곳이지만, '텔레페리코'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올 때 바라보는 그 풍경은 얼마나 멋있었을까?

"이른 아침에는 능선을 따라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듯하고, 캄캄한 밤에는 우주의 한가운데서 유영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집에 돌아 올 수 있었다."고 그 시절을 표현했다.

 


 

 

네팔에서는 두피가 딱딱해져 있고 군데군데 구멍이 난 십대 환자가 있었다. 그를 위한 치료법은 현지 의사가 가르쳐주었는데, 머리의 구멍에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병은 두피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지 않아 그곳에 파리가 알을 까고 구더기가 자라 생긴 피부기생충질환이었다. 매일 두피에 난 구멍으로 기름을 부으니 구더기가 수십마리씩 기어나왔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우리 나라의 한방진료에 관심이 많아서 '우즈베키스탄-대한민국 한의학 진료센터'가 있다. 그 곳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때에 어떤 전화 예약 환자의 방문을 기다렸는데 그는 다음 날에 진료실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전화 통화를 한 후 1200km떨어진 곳에서 택시를타고 진료를 보러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려인 김씨로 한국 한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어 그 먼 길을 달려온 것이었다. 몽골이나 우크라이나에서 일하는 의사선생님들은 고려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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