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은 아담한 사이즈로 딱 읽기 좋다. 예쁜 표지로 손에 들어오는 물리적 느낌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노라의 시선에서 본 이야기는 초록색 글자로 쓰여지고, 모라의 시선에서 본 이야기는 검정색 글자로 쓰여졌다.
소설가 김 숨은 추천사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은 이의 창가에 이 소설을 놓아두고 싶다." 고 했다.
절반 정도 읽었을 때는 추천사의 의미가 그리 와 닿지 않았으나 책을 덮는 순간 그 추천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시는 곧 메타포"라는 말이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소설인데도 시적인 은유가 많다고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울고 싶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에 노라의 울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 입술을 깨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가 뻣뻣해지면 덩달아 목이 아파져서 울고싶어진다는 걸 알 뿐이다'
노라의 엄마와 모라의 아빠가 재혼을 했고 그들은 어린 시절 7년간을 함께 살았다. 노라의 눈으로 본 모라는 어느때나 웃는 낯에 새엄마뿐 아니라 학교 친구들과도 관계를 잘 형성하는 곰살맞은 성격의 아이였다. 노라는 너무도 다른 성향의 엄마와 살아가는게 힘겨웠고, 그로 인해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무뚝뚝한 아이였다. 뭘 하면 욕을 먹고 뭘 안하면 매를 버는 성격으로 어린 시절의 자신을 표현했다. 노라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지 알 수 없고, 인생의 의미도 목표도 없이 살아가는 우울한 젊은이였다.

그런 노라에게 어느날 계부가 죽었는데 그의 화장에 함께 가줄 수 없냐는 모라의 전화가 온다. 그렇게 둘은 성인이 된 후 처음 만났고 하루를 함께 보낸 후 여전히 그들 사이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헤어진다.
장례식을 다녀온 이후는 모라의 시선에서 본 삶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라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노라의 시선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한부모 가족이라도 엄마의 손에 길러지는 딸과 아빠에게 양육되는 딸의 삶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모라는 노라와 만나기 전 시골 친척 할아버지에게 맡겨진 말 그대로 불쌍한 아이였다. 온 몸에 이가 득실거리는 돌봄이 전혀 되지 않은 아이. 그녀의 삶에 가장 사람답게 산 순간은 어린 시절 노라와 함께 살았던 7년뿐이었다.
노라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의 내재해 있는 우울함에 마음이 아팠지만 모라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은 그녀의 삶의 외로움과 고단함에 가슴에 찢어지는 듯 했다.
둘의 만남에 극적인 변화는 없지만
노라의 손에 적어 준 모라의 이메일 주소를 찍은 플로라이드 사진 한장이
그들의 존재에 관한 인식과 연결로의 기대에 한 발짝 다가서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