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크레딧 - 빨간 마후라 신영균의
신영균 저자, 박정호.김경희 정리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영균은 92살의 한국 원로 영화 배우이자 사업가이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본 적 없었고, '빨간 마후라'라는 노래만 들어보았을 뿐이다. 그는 한국 영화사의 산 증인이다. 그의 책을 읽으며 한국 영화의 역사를 알게 되어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한국 전쟁 후 우리 나라는 가난했고, 많은 책과 영화들을 보면 지독히도 못 살았었던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 1960년대에 많은 한국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나라가 가난하다고 예술과 문화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연극도 공연되고 영화도 찍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1957년에 우리 나라 개봉 영화관이 11개였고 재개봉관을 합하면 48개의 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1961년에 영화<마부>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여 한국 영화 최초 국제 영화제 수상작이 되었었다고 한다. 1964년에는 한국과 홍콩의 합작 영화 <비련의 왕비 달기>가 촬영되었다. 60년대에 벌써 합작 영화를 만들었었다니 정말 놀라웠다. 1964년에 신영균씨는 <빨간 마후라>로 아시아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영화의 역사가 이토록 오래되었고 발전되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지금은 TV와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영화를 보며 외국의 드라마나 영화도 안방에서 손쉽게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TV도 흔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유행했던 것 같다. 명동과 을지로에 영화를 보기 위해 긴 줄을 섰고, 재개봉관에서는 좌석에 앉지 못해 서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빨간 마후라 영화를 촬영할 때는 실제로 군인이 뒤에서 총을 쏘며 연기를 하여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했다고 한다. 지방 촬영을 가던중 사고가 나서 죽을뻔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도로도 제대로 닦여 있지 않았고, 차의 성능도 안 좋았으니 지방 촬영 그 자체가 큰 위험이었을 것이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북한에 납치되어 영화를 촬영하다가 탈출해서 나왔다고 했는데, 김정일이 그들의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그들을 납치했다고 했다. 그의 영화 상록수로 인해 한국에서는 새마을 운동이 일어났고, 북한에서도 북한판 상록수 영화를 요청하여 신감독이 납치 기간 동안 촬영했다고 하니 그 영향력이 상당했던 것 같다.


나느 90세 이상을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 쓴 책을 읽으면 무조건 감동한다. 그들이 살아온 삶은 한국 격변의 시대를 다 경험한 역사이다. 일본의 식민지, 광복, 6,25전쟁, 가난, 산업화, 5.18, 민주주의, 경제 발달까지 모든 역사를 본 산 증인들이 아직도 우리와 동시대에 살아가며 우리에게 역사를 이야기해주신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신 분의 책에는 얄팍한 우리의 철학을 뛰어넘는 삶의 교훈이 있다고 느낀다. 신영균씨의 책 '엔딩 크레딧'은 한국 영화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발전 과정을 겪어왔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이 함께 있어서 읽기 편했다. 책도 이쁘고 내용도 좋고, 이런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성공하고 싶은가. 그러려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라. 

그리고 끝까지 해라. 다른 지름길은 없다.

지극히 상식적인지만 상식을 벗어난 진실은 없다.

성공의 사다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준비와 예열이 없는 도약과 폭발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p50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