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정원 산책 - 사람, 식물, 지구! 모두를 위한 정원의 과학
레나토 브루니 지음, 장혜경 옮김 / 초사흘달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대부분의 중년 여성들은 식물을 좋아하며 대다수는 자신만의 정원을 가지는 것을 꿈꾼다. 나 또한 정원에 대한 꿈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꿈을 키우고는 있으나 현실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예쁜 묘목을 발견하면 그 아이들이 자연에서는 무조건 잘 자라서 우리 집을 멋진 정원으로 꾸며줄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으나 , 그것이 엄청난 오해라는 것을 전원에 들어온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식물도 예쁘게 길러보려면 어느 정도의 이론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누적되어야 꿈꾸는 정원을 가꿀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식물에 관한 책이 나오면 나의 관심은 바로 그 책을 향해 달려간다.

 


 

"식물학자의 정원산책"은 이탈리아의 파르마 대학에서 식물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레나토 브루니라는 교수님이 쓴 책이다.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1500평 규모의 정원을 가꾸기도 하는 레나토는 사계절의 정원을 산책하며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내가 흔히 듣게되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다. 역시 교수님이시니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가 많았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남겨볼까 한다.

 

 

식물맹과 자연결핍증후군

 

식물맹 (plant blindness)은 식물을 보고 있으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배경음악을 듣다보면 그것이 어떤 곡이었는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할때가 많은것 처럼 식물을 일종의 배경 음악으로 여기는 인지 장애를 앓는 현상을 말한다. 음악이 고막을 거쳐 지나가는데도 기억에는 남지 않는 배경음악처럼 식물을 눈으로 보고도 기억은 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식물맹이다.

 

자연결핍증후군(nature-deficit-disorder)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연과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결과 도시인들은 집근처에 사는 새가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지만 텔레비젼에 나오는 세렝게티의 사자에 대해서는 더 잘 알고 있다. 레나토 교수는 자기 자신도 자연결핍증후군을 앓는다고 했다. 식물에 관해 모르는것이 거의 없지만 자신의 정원에서는 아내가 자신보다도 식물들을 더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꽃시계

 

칼폰 린네라는 식물학자는 1751년 꽃밭으로 시계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몇몇 꽃들은 규칙적으로 피고 지며, 그 시간은 시계를 맞추어도 될만큼 상당히 정확하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9시에는 조밥나물, 민들레, 뚜껑꽃, 10시에는 금잔화 11시에는 캘리포니아포피를 순서대로 심게 되면 그 꽃들이 개화하는 것을 보고 시간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종을 개화 순서대로 배열하면 현재의 대략적인 시간을 알 수 있는 꽃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가 실제로 만든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론이었다. 이후에 많은 식물학자들이 그의 꽃시계 아이디어를 시도해보았는데 장소에 따라 기후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다고 했다. 어쨌든, 기계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꽃으로 만든 꽃밭으로 대충의 시간을 대중에게 알게 해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큰 화분 방치하기

 

집 앞이나 마당에 큰 통이나 화분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자연에 좋다고 한다. 지나가다가 이런 화분들을 보면 "관리나 좀 하지? 저런걸 왜 여기다 두지?"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식물학자는 그냥 커다란 통에 흙을 가득 담아서 그냥 내버려 두고 지켜보라고 한다. 그러면 바람이 이런저런 씨앗을 실어 올 것이고, 운좋으면 계절에 맞추어 예쁜 꽃이 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방치된 화분의 장점은 돈과 에너지가 전혀 들지 않으면서도 제법 멋을 부릴수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토착 생물이 잠시 머물다 갈 피신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 생물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진면목을 지켜볼 수 있는 자연 학습장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토착 생물들의 피난처가 되어 자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내게는 신선하고 의미있게 들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흙을 품은채로 구석에 박혀있는 우리집 화분들도 우리집 지렁이와 벌레와 곤충들에게는 좋은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은행나무의 성전환

 

레나토 교수의 마을에 250년된 은행나무가 이제껏 수나무로 자라왔었는데, 갑자기 암나무로 전환된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암나무 은행나무는 그 열매의 냄새로 인해 가로수로 사용되는 것이 적절치 않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수나무만 심어두었는데 그것들이 암나무로 바뀌는 경우는 흔히 있는 경우라고 한다. 식물은 암수딴그루인경우도 있지만, 암수가 한 몸을 이루거나 한그루에서 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다가 번식에 가장 유리하고 자손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나면 스스로 암수를 결정하여 그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미국 천남성의 경우는 자주자주 자신의 성을 바꾼다고 한다. 해마다 성을 바꾸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그 해의 환경에 적응하여 번식을 잘하기 위해서이다. 고사리도 역시 성전환이 가능하며 주변 고사리들의 성을 결정하는 것은 암고사리의 호르몬을 통해서라고 한다. 식물의 세계는 확실히 인간과는 다르며 복잡한 것 같고, 그래서 재미있는 것 같다.

 

 

이 외에도 많은 재미있고 전혀 들어보지 못한 식물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많이 나온다. 왠지 이 책을 읽고 여기에 있는 얘기들을 외워서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그들이 나를 식물학자처럼 대우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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