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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 한 호흡 한 호흡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상 회복 에세이
이아림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누군가의 에세이에서 공감가는 구절을 이렇게 많이 뽑아본 적이 있었나. 나의 삶은 당연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내 생각은 나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것이라는 확신으로 책을 읽어온 교만함을 버리게 한 에세이였다.
그래서 결론은? (우습지만) 앞으로도 포기하지 말고 요가를 계속해야겠다는 다짐.
P.164 요가와 글쓰기. 둘의 공통점은? 1. 더디다. 2. 고독하다. 3. 평등하다. (누구나 가능하다.) 4.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5. 용기가 필요하다. 6.. 자기수련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7. 아프다. 8. 자학과 자족 어디쯤에 있다. 9. 구원이다. 10. 힘을 빼야 한다. (힘을 뺄수록 좋다.) 11. 또?
P.176 나는 멍 때리는 사람이 부럽다. 멍을 잘 때리는 사람은 어쩐지 신뢰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매여 있지 않은 듯하다. 자신을 무방비 상태로 던져놓는다. 그러곤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으로 한껏 가벼워진다. 멋지다. 요즘은 그런 무위의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오늘 밤은 방심하기로 했다. 하루를 마치는 사바아사나처럼. 잘 안 되면 연습이라도 해서 마음을 놓아주자. 좋은 음악을 듣거나 좋은 차를 마시거나 좋아하는 인형이라도 붙들고 잠시 멍청해져 보는 거다. 얄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더 멀리 날아가 보기. 한껏 무심해지기. 이런 유영의 시간은 모두에게 열린 가장 가까운 사치인지도 모른다.
P.179 요가 책을 읽다가 수카sukha와 두카dukha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산스크리트어로 각각 ‘좋은 공간’과 ‘나쁜 공간’을 의미하는데, 전통 요가는 수카보다 두카를 우선한다고 했다. ‘둑을 터서 물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흐르게 하는 농부’처럼 허약하거나 경직된 부분(두카)을 발견해 해소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럼 우리의 심신은 자연히 수카 상태에 이르게 된다.
P.188 그 순간들이 남들의 공감을 사거나 타인에게 자랑할 것은 못 되겠지. SNS에 올릴 만큼 멋진 그림도 아니고. 그러나 분명한 건 그런 순간들에서 나의 행복은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게 필요한 건 지지리 궁상맞고, 후지고,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도 실속을 챙기듯 행복한 순간들을 알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P.202 누마짱은 말한다. "손에 넣은 후부터 승부입니다." 그렇다. 꿈은 종착지가 아니다. 집을 구한 후부터의 인생이 중요하다. 집을 산다는 건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팔거나 빌려주거나 하지 않는, 오래도록 열심히 살아간다는 의미로 ‘나의 집’을 갖고 싶다. 그곳에서 담담한 일상을 성실히 쌓아가고 싶다.
P.211 되돌아보면 시간이 가장 만만했다. 잠자는 시간을 포기하고 이동하는 시간을 아끼면서, 촌각을 다투며 살면 열심히 사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이 별건가. 결국 시간으로 이뤄진 게 인생이라고 한다면 제 시간을 포기하면서 자기 인생을 산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시간의 향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유하게 존재하는 자는 말하자면 늘 시간이 있다. (…) 그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P.229 요가 수업 때마다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힘을 빼보세요."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워야지. 아프니까 자꾸 웅크리는 자세가 된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 슬며시 힘을 빼보면 중력이 몸을 끌어내리면서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온다. 무시무시하다. 형벌을 받는 기분이다. 그때 깨닫는다. 힘을 주는 것보다 힘을 빼는 데 더 힘이 드는구나. 좀 더 숙련되면, 세상살이에 좀 더 노련해지면 나도 힘을 뺄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글쓰기에도 타인과의 만남에도 편안함을 주고 싶은데. 그러나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P.240 우리는 얼마간 모자란 존재들이다. 피하고 싶지만 별수 없이 부족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가 삶의 전망을 크게 바꾸는 듯하다. ‘그래, 무엇이 어찌 되었든 이게 나지’ 하면서 자신을 베이스 삼아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가면 된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그것이 ‘내게 없는 근사함’을 좇는 것보다 훨씬 홀가분하고 담대한 기운을 선물해준다.
P.266 어쩌면 우리의 함정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경제적 빈곤에만 있는 것 같지 않다. 자신의 가난을, 마음의 공허를 스스로 외면하면서 그럴듯한 허울을 쌓아 올리는 것이 더 큰 구멍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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