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4
독일의 사회학자 스베냐 플라스푈러는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에서 "모든 가능성을 가능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박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했는데, 난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두고도 이 필터가 좋을까 저 필터가 좋을까 한참을 망설인다. 매사가 그렇다. 애매하고 두루뭉술하고 모호하고 흐리멍덩하다.
P.20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누더기 같은 숨을 내쉬며 비단 같은 안식의 한숨을 욕망하고 있는 것 아닐까. 크게 부풀어 올라 차분히 가라앉는 숨, 담대하고 느긋한 숨, 그 사치스러운 한숨을 말이다.
P.22
한때 초 단위로 산다는 말이 근사하게 들린 적이 있었다. 시간을 쪼개 치열하게 사는 삶, 배로 사는 삶, 미쳐야 미친다는 그런 삶 말이다. 하지만 자기극복이 자기착취가 됨을 깨닫고부터는 깊은 회의와 낭패감이 몰려왔다. 턱턱 숨이 막힐 때마다 아늑해지는 정신을 붙들며 난 무엇을 했던 것일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정작 내 숨은 이토록 짧고 얕은 것을.
P.23
요가 수업이 시작됐다. 오늘도 다짐한다. "동작보다 호흡. 서두르지 말고 허둥대지 말고 천천히 나만의 흐름을 만들어가자." 요가가 가르쳐준 것, 그것은 이 한숨, 한숨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이렇게 숨 쉬는 법부터 배우고 있다. 매 숨이 연습이다.
P.37
요가를 하다 보면 가끔 헷갈린다. 내가 맨몸으로 싸우는 건지, 혹은 내 몸과 싸우는 건지 당최 모르겠는 거다.
P.56
시를 쓰고 요가를 하고. 그것은 지루하게, 그러나 소중히 반복될 우리네 인생이다. 깊이 호흡하고 높이 팔을 들어 올리고 허리를 비틀고. 그러는 동안 작은 매트 위에서 나는 어떤 시를 쓰고 있는 걸까? 나만이 느끼는 내밀한 기쁨, 열정, 두려움, 환희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P.93
아빠의 몸은 어마어마하게 단단하다. 어깨는 까맣게 그을렸고 다리는 상처투성이다. 그 모습은 내게 슬픔을 주지만 동시에 사늘한 경각심도 준다. 아빠는 맨몸으로 헤쳐오신 것이다.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치 않은 정직성이다. 아빠는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패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P.101
내 몸은 매달 생리를 한다. 강간의 위험 속에 살고 부당한 평가와 비교의 대상이 된다. 어떻게 하면 여자로서 나는 더 자유롭고 내 의지껏 살아낼 수 있을까. 내가 바라는 것은 깊고 깊은 숲속을 여행하는 것, 도서관에 앉아 밤, 늦도록 책을 읽는 것, 내키는 만큼 걷고 또 걷는 것이다. 아마도 난 내 자유를 방해하는 것들과 계속 싸워나가야 할 것 같다. 여자로서의 내 운명을 온몸으로 힘껏 살아내기 위해서.
P.115
경쟁하는 요가는 없다. 요가엔 잘하고 못하고가 없으니까. 나도 안다. 알지만 이 습관적인 경쟁심을 떨쳐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비교하지 않고 쫓기지 않고 온전한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요가를 계속 해나가야겠다.
P.144
문득 난 요가를 진심으로 즐기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닌데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끌어안고 있었다. 시험 보는 수험생처럼 기초를 탄탄히 하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매사에 진지하고 치열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열심히 하면 좋잖아요.) 하지만 무리한 목표 탓에 현재 누릴 수 있는 즐거움마저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다. 요가가 주는 정신적 고양, 고요하고 단순한 세계, 자유로움, 가벼움, 넉넉함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건 정말이지 손해 보는 짓이다. 즐기지 못하면 손해다.
P.146
경계 없이 많을수록, 빠를수록, 클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기준을 새롭게 세워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나는 지금 이대로 충분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