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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버티는 인생만 살다 보면
자신이 뭐가 하고 싶어 이곳에 있는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아무튼 살아 보자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때로 이렇게 사는 것은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니느라 몹시 피곤할 때나
혼자 침대에 쓰러져 외로움에 몸을 떨다 숨을 쉬어도 가슴만 아파 올때,
그나마 가족이 있었던 시절의 생활이 문득 떠오를 때.
p10-11
시간을 죽이며 흘려보내기만 하는,
버티는 인생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
그러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보려고 움직인다.
지금 내가 혼자 이곳에 있는 이유도 그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현관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는 그 공기의 허전함은
피곤을 풀어주기는 커녕 외로움과 공포만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아직 뭔가를 제대로 해보지 못해서 일까.
못가는게 아니다.
갈 수 있다.
그러나 가지 않는다.
왠지 그렇게 되었다.
떠나온 곳에서의 일은 생각하면 언제나 그리움으로 빛난다.
p47
떠나온 곳, 시간, 사람
당시에는 싫고 좋고 모든 감정들이 다 들거나, 들지 않겠지만
그래, 지나오면 그리움만이 남는다.
씁쓸하지만 그 곳에서 빛나고 있는 그리움
사람은 거의 모든 것을 자신의 생각에 준해서 보니까요.
p150
논리와 비논리
합리와 비합리
선과 악
각자 내 입장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선이지만
상대방의 입장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악한 것이다.
완전 지극히 상대적인 것.
나는 무엇이든 혼자서 해 왔지만
사실은 사춘기 때도 보살핌을 받고 싶었나봐.
어디를 가든 누가 같이 가 주고,
함께 생각해 주고,
끈기 있게 옆에 있어 주기를 바랐는데.
그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지만 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니까,
내가 원한 것은 아마도 그뿐이었으리라.
p155
나는 지금 원한다.
무엇이든 혼자서 해온 나에게 그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닐까.
내가 무언가를 혼자 할 수 있었던 것이
다 부모님이나 주위사람들의 걱정과 노력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겠지만,
난 그때도 외로웠고, 지금도 외롭다.
넌 할 수 있어, 잘 하잖아.
라는 무책임한 말들로,
난 할려고 노력했고, 잘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외롭다.
"사람은 훨씬 더 무겁고 불확실한 존재야.
산뜻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마음 속 애매모호함을 행복한 사람에게 터뜨리잖아."
p161
자신의 불행을 마치 행복한 사람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부족을 저 사람의 풍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설사 그게 맞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요시모토 바나나. 두번째 책인데, 내가 그런 류의 책만 골라 읽은 것일까? <하드 보일드 하드 럭>다음의 책인데, 이 책 또한 결국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 유미코의 이야기다. 책을 읽으며 유미코의 기억과, 주위사람들의 말과 그 모든 상황들이 왜 이렇게 모호하고 말이 안맞지, 왜 이렇게 어수선하지, 아니 왜 이렇게 선명하지? 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 생각의 원인은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밝혀졌다. 이 책의 전부가 꿈인 것이다. 유미코는 이미 몇년도 전에, 그러니까 엄마가 아빠를 죽이고 자신 스스로도 목을 그었던 그날, 그날 죽었던 것이다. 엄마의 손에. 유미코의 방에도 핏자국이 검게 남았다는 걸 볼때, 이상하다 싶더니, 결국 그녀도 이미 죽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방황하던 그녀의 영혼은 이모의 도움으로 쇼이치의 꿈 속에 들어가게 되고, 둘은 서로를 위로하고 치료하는 여행을 떠난다. 대게 그녀의 인생에서 어두웠던 곳을 찾아다니며 밝게 만드는 여행이었다. 사촌지간에 결혼하잔 소리가 쉽게 나온게 좀 뜬금 없긴 했지만. 그런 치유 너무나 아름다웠다.
부모를 여의고 혼자 살게 된 유미코. 그 외로움을 나 또한 절실히 느꼈다. 일부러 더 밝은 척, 태연한 척,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그 모든 것들에서 나를 발견했다. 나는 왜 이 곳에서 혼자 외로움을 느껴야 하는가.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엄마아빠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근데 왜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있을까. 성적때문에? 사실, 대학교와서 그다지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냥 내가 배운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성적따위는 안나와도 상관없다. 내가 무엇을 배웠고, 얼마가 남았느냐가 중요했다. 그럼 이 집이 한달동안이나 비어있어야 된다는 것? 집이 외로움을 느낄까봐? 아니면 읽혀지지 못한 책들이 먼지에 쌓여갈까봐? 휴.. 나도 참..... 내 고독은 혼자 남게 될 집, 책, 여기 이곳의 모든것보다 덜 할 것이다. 나는 말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유일한 친구가 나인데. 내가 떠나면 얼마나 외로울까......
아무튼, 책, 잘 읽었다. 급작스런 죽음을 맞아 억울하지도 슬프지도 못하는 영혼들을 위한 책일까. 행복해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