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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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인간도 분명 존재하지만, 대개는 소속감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너에게, 우리에게, 여기에. 그렇게 어딘가에 소속되는 순간, 그 인간 고유의 색은 점점 진해지기도 하고, 옅어지기도 한다. 특히 집단일 경우, 그 옅음의 정도가 심해져서 나중에는 자신이 당초에 어떤 인간이었는가를 잊어버리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나조차도 내가 어떠한 인간이었는가를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이런 삶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일까.

 

어쨌든 이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무언가를 바꾸고자 노력하는 존재가 분명 존재한다. 이 책에 존재하는 스파이들처럼. 그들은 처음엔 점이었다가, 점점 선이 되어간다. 세계를 바꾸는 건 커다란 무언가가 아니라, 어쩌면 수많은 점이 모여 선이 되고, 그 선들이 모여 면이 되었을 때 발휘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고요한 밤에 눈이 쌓이듯.

 

이 소설 속에는 이니셜로 상징되는 수많은 개인들이 등장하는데, 나중에는 그들이 서로 연결되어 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정신과 의사 D는 자신의 개인 본연의 특성을 숨기고, 쌍둥이였던 언니 행세를 하면서 사라져버린 언니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XZ의 상담을 거치면서 스스로 자신을 깨닫게 된다. 처음에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고 하더라도, 드러나는 균열 속의 퍼즐을 하나씩 맞추다보면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그들은 어쩌면 더 우리보다 더 고뇌하고 멀리 보는 까닭에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하루 더 살아있음에 안도감을 느끼고, 감사함조차 표시할 기회조차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자 X와 미궁 속을 해매는 자 Z의 앞날은 어쩌면 위태롭게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웅크리고만 있지 않는다. 현재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무엇인가를 꿈꾼다. 현재 자신이 제대로 서 있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과 현재에 대하여. 실존에 대한 탐구는 모든 것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들의 바깥에서 선 Y는 윗선의 지시 아래 그들을 감시하고 뒤쫓는다. Y 또한 아무런 사심이 없는 것처럼 일을 행하면서도 자신에게 묻는다. 이러한 행위의 의미에 대하여. 그 자체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목적 혹은 자유를 위한 갈망을 위하여 의문을 잠시 내려놓는다. 나도 또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윗선에서 지시하는 일은 처리하게 된다. 윗선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거점의 도중에서 일을 처리하는 자의 의문 같은 건 사실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모든 것은 속도를 잃는다. 소수는 다수의 흐름에 고개를 숙이고, 힘은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앞의 이들과 달리, B 보스는 체제 속 이익을 누리면서도, 그 나름대로 취하는 태도나 사고방식은 또한 대조적이다. 공평한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목적 아래에서, 자신을 제대로 접대하는지를 시험하고 그 기대에 어긋나는 자에게는 가차없이 응징한다. 돈이라는 개념이 탄생된 이래, 공평한 대접이라는 게 있기나 한가? 현대의 인간은 자신이 아닌 배경을 구성하는 재력이나 직업, 그리고 증명될 수 있는 수치를 통해 권위를 인정받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러한 속성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인지 못하는 척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개개인의 속성 같은 것은 가치를 매길 수도 없거니와, 인간의 가치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하는 세계는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기 위한 출발점은 무엇인가. 이 세계에서 말하는 스파이란 어떠한 존재이며, 왜 스파이로 존재해야 되는가를 탐색해나간다.

 

혁명. 역사 속 과정을 살펴보면, 주로 정치적인 혁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체제의 전복 혹은 켜켜이 쌓인 다수의 염원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일련 체제의 전환이기도 하다.

 

혁명을 원하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결과적인 성취인데, X의 기억상실증, Z의 지원금 박탈, B의 의문과 한탄, Y의 선배의 죽음 등은 계속해서 실패의 예감을 풍긴다. 그러나 한 세계의 절대적인 존재라고 흔히 불리는 빅브라더에게 맞서 변화해야 된다는 "의식" 자체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시도조차 없다면 실패도 존재하지 않기 마련이므로.

 

 

이렇듯 체제의 전복은 기존 체제에 있어 어떤 위협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기득권 세력은 자신이 가진 쟁취한 이득을 뺏기는 것이 두려워, 균열이 느껴지는 순간부터 완전히 흘러 무너져 내릴 때까지도 전복만은 막고자 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존재하듯 모든 것은 무질서로 전환하려는 성향이 있고, 구축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이 자신의 영역을 견고하게 하려는 에너지는 어디서 필요로 하는가. 과연 그들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아니다. 결국은 누군가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우리는 그러한 것을 의심하면서도 당장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우리들은 그들의 이익을 얻고자 자신의 에너지를 내어주고, 그들에게는 이미 잉여된 이익, 값어치도 없는 에너지를 얻는다. 우리는 현실 앞에서는 그것조차 아쉬울 따름이다. 당장의 위협을 해결하려는 본능은 우리를 결합하지 못하게 하고자 하고, 그들은 그러한 틈을 파고들어 더욱더 자신들의 체제를 공고히 한다. 우리가 점점 더 분해될수록, 그들은 점점 더 결합이 강해진다. 하지만 체제 안에서 어떤 부조리함을 발견하고 맞서 싸우고자 하는 용기 있는 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하나의 커다란 용기이기도 하다. 혁명은 그러한 자들로부터 비롯된다. 이야기는 점점 그렇게 그들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으로 치닫는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초대장을 받는다. 그 가운데에는 지식을 지키는 자인 노인이 있다. 많은 경험을 보유하고 있고, 찾아온 이들에게는 스스로 찾고자 원하는 지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그 존재의 가치가 의미가 있다. 그러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도 못하거니와, 누구에게나 그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마치 지식과도 같다. 구하는 자에게만 열리는 문처럼.

 

그들은 모두 선택의 기로에 섰고, 그 후 결정했다. 삶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선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저항의 일종이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의도대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더 무의미한 일이었음을 그들은 깨달았을까. 스스로 패배하는 것조차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들의 시간이 흐르듯 나의 시간도 흘렀다. 눈을 아무리 비벼봐도, 사실 무엇 하나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시도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가만히 책을 덮어본다. 프롤로그의 문구가 눈에 보인다. 그들은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나는 아쉽게 책을 덮었지만, 그들의 이야기의 종결 여부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끝맺음이야말로 그만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기록하고, 그렇게 켜켜이 쌓은 기록들로 세계 어딘가에 어떤 일그러진 부분을 바로잡을 원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삶은 훨씬 즉각적인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영상매체 위주의 전달문화, 누군가의 흔적을 바로 추적할 수 있는 일상 속에서의 장비들은 더 많은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히 편리함의 강물에 발을 담갔고, 다시는 이전의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게 되었다. 잃어버리고, 또한 얻는 것에 대한 가치는 어느 쪽에 무게의 추가 기울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일까 작가는 이야기한다. 책과 생각하는 힘에 대하여. 책은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인간에게 제공되는 영상매체와는 달리 스스로 힘을 기울여야만 작가의 생각이나 그 안에 담긴 지식이나 이야기 등을 습득할 수 있다. 그만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인간에게 또 하나의 변화가 생성된다. 계속해서 우리는 읽고,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저 먼 장벽의 그들에게 가장 최고의 복수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소극적인 저항일지라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껏 사랑하기.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지키고 보호하려는 마음. 무언가를 지켜나가는데 이 감정만큼 강하고 단단한 것이 있을까. Y의 선배나 엄마의 행동은 그런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또한 당신을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이며, 앞으로 이 세계는 어떻게 변화될까. 이 책과 함께 하는 동안, 언젠가 내게 다가올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 되돌아보게 된 긴 여정이었다. 이 책을 계기로 끝은 끝이 아니고 시작은 시작이 아닌 것처럼, 세계 곳곳에 펼쳐진 수많은 다른 것들에 대해 탐구해 나가고자 한다. 존재의 여부는 그저 살아있음보다 사는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 진짜로 살아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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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패티 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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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녀의 책을 받았다. 문장 하나하나에 그녀만의 생각이 담겨 있어 나도 모르게 곱씹게 된다. 그녀의 글들은 미문이라고 할까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도 아름다워서, 한동안 만족스러운 느낌으로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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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되는 책들
최원호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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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만으로도 아름다운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달콤함이 느껴진다. 내 인생의 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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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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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그머니 아무렇지 않은 척, 2016년의 첫 글이다. 너무도 간만에 쓰는 글이라 낯설기까지 하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못하는) 요즈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있는 표지에 이끌려 2015년 마지막 날에 우연히 집어들게 된 책인데 때로는 이런 제멋대로의 충동이 도움될 때도 있구나 싶다. 참고로 표지는 바다 옆 방(Rooms by the Sea)이라는 표제를 가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이 책은 데이지 굿윌(혹은 데이지 플렛),이라는 한 여자의 일생을 둘러싼 스톤월 사람들 일대기에 관한 소설이다. 그녀의 인생을 따라 읽다보면 어느샌가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 관한 과거와 현재를 떠올리고 미래를 그려보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어디론가 떠나거나 정착하며 살아가게 되는 일상적인 현실들을 지금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당연히 기억하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그것들은 희미하게 하나둘씩 퇴색되어 가고 또다시 닥쳐오는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며 기억하느라 앞선 모든 것들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또한 삶이라는 것은 어떤 '때'에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나의 생각들은 계속해서 떠올랐고 그녀와 그녀 곁의 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숨죽였다. 그녀의 부모와 자식들,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일에 관한 이야기들은 우리와도 별반 다를 바 없이 사소하고도 극적인 면들로 가득하다. (아니, 누군가는 이들보다 더 극적인 인생을 살았겠지만) 그렇기에 어쩐지 자꾸만 나 자신으로 하여금 비춰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도 가끔은 운명 같은 우연이 있듯 그들의 이야기에도 운명과 우연, 사건과 사고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무섭도록 정확한 시간이란 존재에 이끌려 마무리되어 간다.


2015년을 마무리하고 2016년을 시작하려는 찰나, 결국은 그렇게 모두가 알고 있는 결말로 향해 가는 그녀와 그 후 남겨진 이들의 모습을 읽고 있는 내 자신이 느끼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이란. 태어나는 자라면 누구나 알게 되는 이 결말을,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오기 전까지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남의 일 구경하듯 가끔씩 상상해보고는 실제로 닥쳐서야 이젠 도저히 뒤로 도망칠 수도 없는 진짜 결말이 와 버렸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러고선 자신은 끝내 마지막은 어떤 페이지로 쓰여졌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남들이 그 페이지의 결말을 마무리하고 또다시 자신들 또한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마무리를 하게 될 것임을 짐작만 할 뿐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순간에도 나의 성가신 일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테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끝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참 이 책을 손에서 끝까지 놓기가 힘들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앞으로도 내 인생 속 페이지를 그때까지 써나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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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9 모든 인생에는 거의 읽히지 않는, 분명코 큰 소리로 읽히지 않는 그런 페이지가 있기 마련이다.

p.172 이 세상의 진정한 문제는 남녀 간의 잘못된 만남에서 기인하는 법이다. 이것이 오래전 터득한 내 소박한 견해이다.

p.187 부디, 제발,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주인공 데이지가 운명의 남편을 만나기 직전 기도하던 말)

p.205 최근 들어서 그녀는 어떤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느냐고 자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p.452 지금 플렛 할머니가 애쓰고 있는 유일한 일은 머릿속에 있는 사실들을 정돈하는 것이었다. 추억의 무게를 고르게 안배하는 일이었다. 인생의 한 막 한 막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이었다. 어떤 순간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애정이 솟아나기도 했다. 그것들은 한 줄에 꿰인 구슬 같았다. 그런데 그 줄이 점점 삭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자기 앞에 놓인 그 일이, 상상력의 노력으로 결말지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억압되고 밝혀지지 않는 얘기를 무덤덤하게 회고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 그렇지만 이미 음미되고 축적되어 기왕에 존재하게 된 일들로 자꾸만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탐닉이나 다를 바 없다.

p.479 "난 평온하지가 못 해" 데이지 굿윌의 (입 밖에 내지 않은) 마지막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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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레이먼드 카버 지음, 최용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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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한다면, 당신은 하루키나 피츠제럴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아하게 된 순서야 어찌되었든간에.
물론 나만의 착각이 섞인 정의일 따름이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실은 오래전부터 나는 그를 좋아해 왔다, 라고 보기에는 그의 은근히 많은 작품들을 다 기억하고 있지도 못할 뿐더러 딱히 원본을 술술 읽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를 잘 안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어디쯤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좀 특별했다. 목차를 보는 순간, 순전히 이건 레이(줄여서 나도 레이라고 괜히 불러본다) 팬들을 위한 안내집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그의 미공개 단편들. 역시 그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알코올, 부부들의 대화, 어떤 경계에서 느껴지는 낯섦과 서서히 융화되는 그 느낌, 그들의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소설 사이로 흘러가는 것, 마주해야만 하는 본질, 결국은 지지부진한 현실들. 혹은 어떤 깨달음. 참고로, 제목만 보고 그에게 쉽게 접근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전혀 달콤하지 않으니까. 처음 맛본 커피의 맛처럼.

이제까지와 달리, 소설뿐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들 - 가족, 존 가드너와 고든 리시, 그리고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그가 말하는 에세이, 그리고 자신이 썼던 것들에 대한 서평들, 초기 단편들도 수록되어 있다. 무려 15년 전 서문까지. 그에게 한발 더 다가선 듯한 느낌도 기쁘지만, 이제서야 나는 이렇게밖에, 생각되는 건 못난 독자의 욕심일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 단행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최근 출판된 <풋내기들Beginners>부터 다시 거슬러 올라가볼까 한다. <풋내기들>은 우리나라에서 먼저 출판되었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의 원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두가지 판본 사이에 차이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고, 취향은 읽는 누군가의 몫일 터. 그리고 전기라 할 수 있는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은 두께에 일단 진정하고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그는 아마도 당신에게 다른 쾌감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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