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환상이다
기시다 슈 지음, 박규태 옮김 / 이학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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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환상이다. 우리는 본능으로 이성(異性)을 찾게 되고 또 그리워하게 된다는 일반의 통념에 과감히 출사표를 던지는 이 한 마디. '성은 환상이다.'과연 환상일까? 아니면 인간 본능으로써의 실재일까?

저자 기시다 슈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에대한 생각은 근대이후의 문화적 산물로 인한 환상이라 주장하고 있다. 근대 이전에는 성이란 아주 개방화되어 있는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성적 터부가 강화되고 그 터부로 인해 강력히 금지된 공간이 생기며 인간들은 그 금지된 공간을 향해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성적 터부란 근대이후 아주 강력해 지긴 했으나, 옛날에도 존재했었고 그 존재의미는 바로 인간의 성에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라 주장하는 점이다. 저자는 인간이란 본시 성에 대한 본능이 망가져 있기 때문에 자연상태 그대로라면 인간은 이성에 대해 끌리지 않는단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인간의 종족 유지가 불가능해 지기에 인간들은 할 수 없이 성적 터부를 만들어 내면서 인간 내면의 죽어버린 성에 대한 욕구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해석은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다. 하지만 흥미로울지는 몰라도 공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아닐런지. 저자는 책의 도입부에서부터 인간은 본능이 망가져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원숭이 태아적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진화의 중간적 단계로 본능 역시 그로 인해 망가져 버렸다는 주장을 답습하고 있는데, 그 학설이 설혹 가능성이 있고 또한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다 할지라도, 그 주장의 내용의 신뢰도가 이 책을 읽는 일반인들의 생각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칠지에는 다소 회의적이다. 그냥 읽을 때에는 고장났나보다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이 '인간의 본능이 고장났다'가 저자의 가장 큰 무기인데, 모든 명제 진행에 막히는 부분 또는 가정 설정 부분에 항상 인간은 본능이 고장났기에 이것은 사실이다고 맺는다. 그로 인해 저자 주장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저 명제를 신뢰하는 수밖에 없다.

저자의 기본명제 자체는 전혀 공감하는 바가 아니지만, 사랑은 일종의 환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보통의 심리학자들은 사랑은 일시적 환상에 불과하다는 표현을 잘 쓰곤 한다. 과연 사랑은 본능에 이끌리는 행동이 아닌, 환상적 기대 속의 휘둘림일까?

흔히들 쓰는 곱상하다는 표현을 빌려보자면, 그 곱상한 사람이 스포츠 머리에 청바지 차림을 하고 있다고 치자. 관찰자가 남자일 경우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관심의 유발 여부를 좌우한다. 그 사람이 남자라면 참 곱상하게 생겼다로 넘겨버릴 일을 여자라고 인식하는 순간에 성적매력을 느낀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여자라는 인식. 관찰자가 남자라면 우리는 겨우 이런 여자라는 단어 하나에 내포되어 있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진짜 사랑은 느낌이 아닌 인식일까?

과연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기고 애틋하게 여기는 사랑이란게 문화적, 인위적 산물이며 우리가 믿는 사랑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의 귀추는 어떻게 되었던지 일상생활에, 우리의 관계에 팽배하는 사랑이라는 낭만속에 저런 실존적 의미를 해석하기보다는 차라리 낭만적 사랑은 존재하며 우리는 본능에 이끌려 서로를 찾아 나서고 이성간에 서로를 위로한다고 믿는 편이 훨씬 나을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 사랑을 하고 사랑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사랑이 하나의 낭만으로 존재하는게 더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까? 다만, 이럴수도 있다는 것을 한 번 본 것이다. 나중에 그 낭만이 깨질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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