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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시골에서 보아왔던 큰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 두터운 줄기와 수많은 가지, 그리고 대롱대롱 나 보란듯이 달려있는 잎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내리 쬐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곳은 고향의 시골집 마당이 아니라 고층 빌딩의 옥상이라 한 번 생각해 보자.
딱따구리가 한 그루의 나무에 올종망종 뚫어놓은 무수한 구멍들. 그 조그마한 어두운 구멍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번 들여다보았더니, 어두컴컴한 그 속에는 우리의 삶들이. 우리 자신들의 나날의 일상이 보인다고 생각해 보자. 음. 그럼 보고 있는 나는 뭐가 되는 거지?
흔하게 겪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고의 틀을 조금만이라도 비틀어 탈피해 보면 나타나는 이런 아이러니컬한 이미지들. 우리는 그런 일상을 벗어나는 이미지를 상상이란 단어의 광주리 속에 고스란히, 고이 모아서 담아둔다.
상상이란 그 자체는 우리의 두뇌를 실로 유쾌하게 만들어준다. 나 자신이 하든 그 누가 해놓은 것을 같이 공유하든지 간에 상상이라는 그 자체는 무겁고 빽빽한 삶 속에서 우리에게 잠시의 여유를, 짓눌려 체증을 일으키는 가슴을 얼마동안은 가벼이, 상쾌히 만들어 준다. 힘든 작업 뒤 잠깐의 커피타임이 우리의 몸을 편안히, 왠지 모를 안락함을 안겨주듯 상상이란 매일의 일상이란 족쇄에 포박 당해 있는 우리의 뇌를, 마음을 잠시나마 훨훨 자유로이 만들어 주는 기특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쾌한 상상이란 것도 막상 내가 하기에는 뭔지 모를 막막함이, 불편함이 따른다. 생각하자니 막상 묶여 있는 머릿속에 자유로이 떠오르는 건 없고, 해서 무엇인가를 보며 자신의 생각의 조임을 조금이나마 느슨히 만들고 싶은데.., 무엇인가가 나의 마음을 자극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 무엇인가가 어디 없을까하는 흔한 코스로 겪을 법한 방황. 그 방황 속의 한 컷에 이어지는 다음 장면은 오히려 지금의 나 자신의 위치를 더욱 무료하고 힘들게, 또한 한심하게 만들뿐이다.
그런 귀차니즘과 막막한 시스템 속에 돌아가는 자신의 두뇌체제에 적잖은 윤활유가 되어 줄, 그런 두뇌체제의 막막한 벽을 과감히 무너뜨릴 망치가 되어 줄 것으로 나는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추천한다.
20여 편의 베르나르의 단편이 실려 있는 <나무>. <나무>의 각 작품들은 하나 하나가 정말 기발하고 눈을 번뜩이게 한다. '아. 그래.' 라는 감탄사와 함께 깨소금같이 쏟아지는 기발함은, 그 기발함이라는 하나의 대상만으로도 읽는 이를 충분히 유쾌하고 상쾌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음이 간다. 같은 인간의 두뇌라지만 어떻게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상상으로 우리를 다시 구성할 수 있을까? <나무>를 읽으면서 드는 작가에 대한 이런 경외심은 존경의 38선을 넘어 점점 질시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18개의 정말 기발한 상상력과 함께 하나하나 인간 세상에 대한 반성적 질문 역시 던지게끔 하는 단편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 하나씩만 머릿속에서 오물거려도 컵 속의 그득한 아이스크림이 알게 모르게 입안으로 실종되어 버리듯 너무나 쉽사리 줄어들어 버리는 아쉬움을 겪을 게다. 게다가, 그 아쉬움이란 것이 재미라는, 반성이라는 테마와는 별개로 너무나 절박하고 애절해서 아마 그 아쉬움 속에서 또 다른 즐거움의 맛을 경험하게 될 터이다.
재미와 아쉬움. 그리고 그 끝에 나만의 사색의 공간을 남겨주는 '상상'이란 곳. 그리고 그 '상상'이란 곳의 가이드가 되어 주는 <나무>. 그곳은 피서지를 물색하고 있는 요즘의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좋은 피서지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한다. 몸만 피서를 한다는 것이 어디 진정한 피서던가? 가끔은 이처럼 생각의 피서지도 다녀올 법하다. 이번에는 우리의 머리도 잠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휴가기간을 줘 보는거다. 혹시 아는가. 베르나르처럼 머리가 시원해(?) 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