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과 밤배 - 상
정채봉 지음 / 까치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잔치의 끝은 항시 쓸쓸했다. 비어있는 그릇이 쓸쓸하였고 바람에 날리는 휴지가 쓸쓸하였다. 주정부리는 어른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쓸쓸하였고 흩어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쓸쓸하였다.'

인간 존재란게 어쩔수 없는지 참 쓸쓸해 보인다. 정채봉 소설 속에 나타나는 저 잔치에 대한 생각은 화려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의 한 이면을 내다보는 깊은 안목인 것이었다. 겉멋에 이끌려 보란듯이 살아가는 생이지만, 결국 누가 뭐라할 것 없이 홀로 남겨질, 홀로 남겨져야 할 인생이란 짐에 얽매인 존재.

<초승달과 밤배>는 이 인생이란 짐에 얽매이지 않았던 순수한 모습에서 점차 세상을 알아가고 나아가 인생이란 짐을 서서히 얹기 시작하는 한 소년, '난나'라는 소년의 성장기를 잔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자연과 어울려, 자연과 대화하며 살아가던 소년 시절에서부터 옛 우리의 시대배경이기도 했던 이농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던 때까지, 한 인생의 그닥 유별날 것 없는 성장의 정취를 쫓아가는 성장 소설이란 게다.

선장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며 지나가는 뱃노래의 소리에 매료되, 선생님께 `선생님 좀 조용히 해요!`라고 말하던 그 소년. 그 소년이 바로 여기에서 만날 '난나'다. 자칫 버릇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선장이 되겠다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모습을 보여 주었던 '난나'. 항상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어려운 이들을 생각할 줄 알던 '난나'. 하지만 이농의 물결 속에서 주변세계가 소용돌이치며 방황하는 광경은 사뭇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했고, 더해 순수하기만 할 것 같던 '난나'도 그 물결에 서서히 휩쓸려 갈 수밖에 없는 모습에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특히나, 자기의 모습을 거부하고 탈피하려던 마지막 시도의 절규조차 무너지던 '난나'의 모습에는 비록 그 시대를 살지는 않았더라도 정녕 저렇게 까지 해야만 했던가, 정녕 탈출구라고는 찾을 길이 없는 것인가라는 변명적 물음과 삶의 외로움,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이 뭍어났다.

하지만 그 때 그 시대를 휩쓸던 소용돌이의 파도는, '난나'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던 그 안개는 그 시대로만 국한될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착한 사람이 더 못살고, 여전히 이웃을 착실히 돕는 사람은 더욱 어렵게 살고, 여전히 법을 지키면 바보라는 소리가 근근히 나돌고 있는 곳이 현 세상이다. 인간 존재란 그런 것이었던가... '난나' 할머니가 말했듯 고통이 없는 복이 어디 진짜 복이냐를 생각하며 사는 이는 이제 거의 없는 것인가... 그 동안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때가 온게 아닌가 싶다. 더 이상 시대가 변했다는 자기합리적 발언을 하기에는 이제 그 골이 너무나 깊다.

목마를 때 마셔야 참 물맛을 안다고 했듯, <초승달과 밤배> 속의 인물들은 인간존재가 그리워서야 참 인간됨을 서서히 깨달아 간다. 비록 한때 이농의 물결이 치던 옛 시절을 그린 소설이라 하더라도 그 정서만큼은, 인간이 진정 알고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그 무엇인가 만큼은 시대를 초월하여 가슴 속 깊은 여운으로 자리잡는 <초승달과 밤배>는 어린 학생에서부터 그 시대를 살아왔던 어른까지도 누구나 함께 읽고 느낄 수 있는 소설이 아닌가한다.

'어디까지 왔냐? 당당 멀었다. 뭐가 보이냐? 초승달과 밤배가 보인다.' 화려하게 살고 있는 인간이 그 동안 걸어온 길. 참된 삶이 진정 무엇인지, 그저 잘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반문하고픈 이때, 그 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인간의 내음이, 초승달과 밤배 같은 순수성이 너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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