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속 왜
강만길 외 지음 / 서해문집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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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살아가며 `왜`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토해내곤 한다. `그건 왜 그래?` , `왜 하필 그거야?` 일상 속에서 무심히 던져내는 그 `왜`라는 단어는 호기심이라는 접착제와 끈끈한 반죽을 이루며 우리의 귀를 수없이 간지럽혀 왔다. 하지만 일상의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툭 튀어나오는 그 '왜'라는 단어와 직면하는 우리들에게는 어김없이 귀차니즘의 봉기가 발발하는게 사실이다. 그냥 받아들이면 될 것을 왜 그렇게 귀찮으냐? 눈 시퍼렇게 뜨고 달려드는 봉기의 위세에 겁먹은 우리들은 이제 그 `왜`라는 단어의 무례함에 지레 겁먹고 그 와의 관계가 소원하게 되었다.

사실 그런 귀차니즘의 봉기가 자연스레 유발하도록 한 것은 나라의 정권도 한 몫을 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머리가 잘린 체 방황하는 과거지사가 제 머리를 찾기 위한 발걸음들로 부산하기 그지 없는 판국에, 군부 쿠테타란 화려한 경력까지 소유하고 있는 정부가 있지 않던가? 그들 행로의 뒤안을 일일이 들추어 낸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와 다시금 조우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귀찮음을 벗어나 두려운 사항이기에까지 이르른게다.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만이 예의 바른 행동이라며 유교를 들먹였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만이 나라에 진심으로 충성이요, 애국충절이라 일컫어지는 기가막힌 밧줄에 옭아 매여져 온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비가 우리나라에 내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이제 우리를 옭아매고 있던 그 동아줄도 서서히 썩어 내려 앉은터다. 하지만 그 옭아매여짐에 순종하는 자세를 보여왔던 우리들은 실제 그 줄이야 어찌됐건 관심이 없다. 풀리던 말던 사는데 지장없는데 뭔 관심의 대상이란 말인지. 여전히 정부소속 귀차니즘과 동맹관계에 있는 우리들, 바보는 항상 즐겁다는 말을 써도 될런지..

그런 우리들에게 `왜`라는 금어를 보란 듯이 남발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강만길, 김영하, 박찬흥, 한홍구 등등. 그리고 그들이 모여 앉아 `왜`라는 포탄을 줄기차게 날리는 거대한 성, 바로 <우리역사 속 왜>. 우리는 그들이 쏘아대는 포탄에 허둥대다 자신이 속박에서 풀려진걸 깨닫고, 옆의 귀차니즘이 당황해 하는데에 또 같이 당혹스러워한다.

포탄이 튀어나오는 대포들도 다양하다. 고구려에서부터 박정희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그 동안 당연시 여기고 있던 사실에 대해 `왜`라는 포탄은 다양한 대포속에서 우리들에게 무차별 융단 폭격을 가하고 있는게다. 특히 일본강점기에서부터 박정희정권에 이르는, 보일 듯 말 듯 한 베일에 싸여 있는 그 시기에 좀 더, 좀 더 많은 포탄이 집중되고 있다. 독도가 왜 일본땅이 아니냐? 장지연은 왜 `시일야방성대곡을 썼는가? 용산에 미국이 주둔한 이유는? 1948년 여수와 순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박정희는 왜 베트남에 군대를 보냈을까 등등등. 포탄들이 튀어나오며 내 지르는 지리멸렬한 괴성들.

그렇게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사실들, 때로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고 있던 사실들을 철저히, 속속들이 파헤쳐 놓은 것이 <우리역사 속 왜>인 게다.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듯 시원스레 쭉쭉 나아가는 그들 각각의 입담은, 그동안 환기 부족으로 텁텁하던 우리의 지적욕구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된다.

과거를 외면시한 국가건축은 그 축이 성할리 없다. 그 동안 과거를 왜곡하며 지어올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휘청 휘청 흔들리는 장면을 우리는 목도하지 않았던가? 저 머나먼 과거의 궁금한 사실에서부터 얼마전까지만 해도 입에서 뱉어내기조차 무섭던 역사의 사실까지 이제는 숨김없이, 낱낱이 알아야 할터다. 휘청거리던 대한민국. 무엇이 잘못됐고, 어디가 썩었는지, 우리가 먼저 되돌아 봐야 사상누각의 행로를 따르지 않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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