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일요일. 어김없이 11시의 기나긴, 힘겨운 고지를 넘기며 -고생했다 위로하며, 부스스한 눈으로 여기가 어디인지를 멍하니 생각한다. `내가 몇 시 잤더라?` 아침도 귀찮고 아무 생각없이 침대에 앉아 주위에 시선의 화살이나 마구 날려본다. 도저히 창문과 문을 구분할 수 없게끔 어지러이 잘 정돈된 나의 방. 그 모습이 나의 눈에 버릇없이도 걸어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조차 귀찮아진다. 방청소도 하고, 환기도, 세탁도 해야 할 텐데..귀찮다..귀찮다. 정말 귀찮다. 푹~ 다시 쓰러지는 사려깊은 몸.

삶의 일상은 이처럼 매번 겪으면서도 때론 지루할 때가 있다. 아니, 매번 겪어서 지루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 지루함이란 자신의 게으름의 사생아라 굳게 여기며 이제는 안 그래야지, 이제는 안 그래야지를 반복하지만 그 반복의 끝은 무얼 생각하며 바지런히 걷고 있는지 그 모습을 보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 자신에게 때아닌 실망을 하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힐끗 보며 지나가는 이가 있다. `여보쇼. 이름이?` `나? 호어스트 에버스라 하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는 호어스트가 소극장의 낭독을 목적으로 쓴 작품들 중 일부를 모아 놓은 것이다. 비록 남에게 들려주고자 자작한 이야기지만 그 자체는 호어스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픽션이면서도 논픽션인, 일상적이지만 일탈적인 이야기들로 가득차 넘실넘실 넘치고 있다. 그 번뜩이는 이야기, 그 마구 쏟아지는 이야기들로 우리의 눈과 귀에도 이미지들이 원 없이 넘치게 된다.

호어스트의 삶. 그의 삶은 게으름 자체, 게으름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삶을 보고 있으면, 양치질을 하면서 손은 가만히 있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해도, 커피 타 먹기 귀찮아 커피를 씹어먹고 조금 후 뜨거운 물을, 후식으로 설탕을 먹었다 해도 거짓말이 아닐거란 생각이 들게 한다. 차마 내가 하기에는 게으르고도 나태한 그 삶. 하지만 왠일인지 호어스트가 하고 있는 걸 보면 절로 유쾌해 지며 절로 웃음이 나온다.

사실 책을 읽으며 킥킥대며 웃기란 쉽지가 않은 법이다. 그저 속으로 미소만이라면 모를까, 옆사람이 의심의 눈길로 나를 쳐다볼 수 있게끔 킥킥대기란, 웃음을 참지 못하기란 힘든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우리와 정서상으로는 다소 이질적인 서양의 대치적 입장에서라면 말이다. 하지만 호어스트, 그는 과감히 그 룰을 깨버린다. `당신, 책을 보며 웃지 않는다고? 흠, 잠깐 이리 와보지. 동양인? 아, 글쎄 일단 와 보라니까.`

월요일부터 일요일에 이르기까지 삶의 에피소드들. 전화요금 할인제만을 믿고 새벽에 전화를 하는 에피소드, 맹장염 수술에 관한 에피소드, 자기 뇌 속의 한판 축구의 현장, 이사 에피소드 등등의 쉼없이 펼쳐지는 에피소드들. 호어스트의 삶에 내재하는 그 에피소드들은 정말이지 유쾌하다. 쉴새없이 키득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책이 이렇게 유쾌해도 되는지 지체없이 반문을 던져본다.

원래 방랑이란 보기에는 낭만적이라도 당사자에게는 항시 서러운 다리운동인 만큼, 호어스트의 삶도 보기에는 유쾌해도 막상 내가 그런 입장이라면 무기력의 표본실이 될게다. 하지만 이런 게으르기만 해 보이는 그의 삶도, 그 나름의 가치의 목소리를 지닌다. 언제나 우리 일상의 밖에서 뻘뻘 땀 흘리며 달음박질을 치고있는 바로 일탈이라는 목소리 말이다.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 바지런히 동으로, 분주히 남으로, 눈코 뜰새없이 생활하는 우리들에게 호어스트, 그는 그저 옆에 멍하니, 여유롭게 서서 우리를 탓하고 있다. `다들 왜 저리 쉴새없이 바쁜거야? 할 일은 잠시 미뤄두고 지금을 생각해 보라구. 잠시라도 일상을 벗어나 보라구.` 그래,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이 아니다. 금요일에만 가질 수 있는, 이제 곧 주말이라는 밝고 가벼운 기대. 세상은 항상 금요일이 아니기에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아니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 바로 호어스트 에버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였을까? 안돼면 자우림의 `일탈`이라도 내 질러 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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