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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오금학도
이외수 지음 / 동문선 / 1992년 1월
평점 :
절판
시간은 이제껏 거침없이 흐르고 흘러왔다. 아무리 애원하며 발목을 잡아도, 울며불며 매달려 보아도, 시간은 그렇게 냉정히 흐르기만 했다. 그 냉정의 흐름속에 휩쓸려 있던 인간들은 그 속에서 우주의 진정한 섭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냉정함에 원망하는 법만 배워왔다. 자연을 고상히 여기며 더불어 살던 인간의 순수한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원망스런 눈에 비춰지지 않는, 멸족의 리스트에 올라버렸다. 썩어버린 세상. 서서히 구린내가 난다.
하지만 `세상 만물이 썩지 않는다면 창조의 숲이 어떻게 생겨 나겠는가?` <벽오금학도>의 한 인물이 했던 목가적 말처럼, 오히려 이 속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웅크림의 시대인지도 모른다. 이제 새롭고 순수한 또 다른 세상의 맹아를 위해 지금 이 시대는 썩어 거름이 되어주고 있는, 새 싹을 위한 처절한 자기희생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혼란스런 마음 속에서 진행되는 <벽오금학도>. 전원의 향토적 분위기 속에 우리 민족 고유의 신선사상을 절묘히 배합시켜 놓은 작품이다. 시골의 청취함에서 시나브로 묻어나오는 그윽한 배경의 향기는 신선사상의 신비함과 더불어 작품이 주는 이미지를 한층 격상시켜 준다. 그 절묘한 궁합으로 인해, 오히려 현 도시로의 배경전환은 심적 거부감을 일으킨다.
`붓 끝에 먹을 한 번 찍어 숨도 쉬지 않고 일필로 순식간에 피워내는 난이었다. 낙관을 찍고 나면 언제나 화선지에서 은은한 난초향기가 맡아져 왔다. 때로는 화선지 속에서 쏴아 하는 솔바람 소리도 들려왔다.` 우리 고유 민족의 내면과 그 이면을 나타내 주는 듯한, 시대를 거스르는 탈과학적 그 이미지. 진정 우리민족의 가슴에 와 닿는 은은한 묵향이 배겨나오는 박진스런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우리의 심적눈을 자극한 작가는 이제 주인공 `강은백`을 통해 더 이상 마음의 눈과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오학동. 한 때는 이 세상 역시 오학동과 다름없었지만 이제는 차원의 벽에 의해 철저히 단절되어 버린 세상. 지금 이 세상이 못내 안타까운 작가의 조용한 절규가 들려온다. 이제는 동경의 대상이 되어버린 그 곳, 율도국처럼 이상적인 그 곳, 그 시절 그 곳에 대한 작가의 울부짖는 소망이 들려온다.
`그래. 짐작했던 대로야. 이쪽 세상은 막혀 있는 세상이야. 막혀 있기 때문에 그림속의 새는 움직일 수가 없어. 아무도 모르고 있을거야. 아무리 말해 주어도 나만 바보 취급을 하겠지.` 작가의 생각이 가득 뭉쳐 있는 이 문장은 이제 결코 가벼이 맘에 닿지를 않는다. 저쪽은 은유의 세상, 여기는 직유의 세상이라 불리는 만큼 처절히 찢겨져 있는 여기. 조야한 우리는 아직도 우리주변의 진정한 벽오금학도를 바라볼 눈을 갖지를 못한다.
이상 추구? 필요없다. 양심의 가치? 필요없다. 물질의 허우대에 온 정신을 빼앗겨 아망을 부리는 우리들, 그런 우리들을 쳐다보는 벽오금학도 인물들의 눈은 애처로워 보인다. 모든 것은 언제나 시작이 현대문명이었다. 그 해석도 마무리도 현대 문명이었다. 이제는 현대문명에서 벗어난 그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