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의 검은 고양이
아라이 만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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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에리크 사티. 이 이름자를 듣고서 `아, 그 사람`하고 떠오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게다. 나 역시 `이단의 예술가 에리크 사티를 위한 헌시`라고 쓰여진 책 표지를 보고서도 허구 속 인물인 줄만 알았지 실존하였던 작곡가였으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를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실존인물이었고 나름의 삶을 지녔던 한 인간이었다. 이런 나에게 역자는 대부분의 사람이 나처럼 느낄 것이라 말 하지만 그의 음악만큼은 생소하지 않으리라 장담한다. 즉, 결코 낯설지 않은 인물이란 말일터다. 사실일까?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런 생면부지의 사람과 첫 대면을 해야 한다는 데에서는, 사교성을 떠나 낯설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들어본적도 없는 그와의 첫 만남을 위해 시간을 빼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하는지 의구심이 드는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책속에서 은은히 풍겨져 나오는 인생의 음악소리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귀기울이게 되었고 차츰 그 음악에 참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에리크 사티. 프랑스 옹플뢰르 출신의 작곡가로 비록 살아 생전에는 그의 음악이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사후 사람들의 귀를 아주 놀랬켰다던 소박해 보이면서도 대단한 인물이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건조히 표현되는 그는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에서 철저히 살아 숨쉬는 한 인간으로써 거듭난다. 그 인물의 환경과 주변 인물들, 내면심리 등이 아주 매끄럽게 진행되는 데에서 그는 더욱 돋보이며 사실적으로 나타나게된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는데에는 한 편의 인간드라마를 볼 때의 편안한 감정으로 대하여도 무리없는, 아니 그 자체가 이 음악의 드라마를 즐기는데 더할나위 없이 적당한 자세가 되어 버린다.

이런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에는 한 여자를 놓고 갈등하는 모습에서부터 진정한 예술가로써의 고뇌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진정한 인간다운 모습이 크로키처럼 신속히, 그리고 날카롭게 그려진다. 아티스트의 모습에서 그로테스크한 내면의 모습까지, 과감히 생략되면서도 부각되는 그 드라마 속에서 독자는 결코 혼란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저 그런 모습을 부담없이 즐기면 되는 것이다. 가끔 술집에서 열리는 파티장면은 마치 여기가 바로 그 무대인 마냥 생동감으로 넘치는, 나도 그 속에 참여하고 있다는 즐거운 착각에 빠뜨린다. 에리크 사티, 그 인생의 음악은 이런식으로 그로테스크하고 우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독자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활기찬 것이었다.

모차르트, 베토벤 등. 음악으로 태어나 음악으로 사라진, 이름만 들어도 주옥같은 음악가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에리크 사티`처럼 낯설기 그지 없는 자에게 다가가보는 것도, 첫 만남의 설레임과 더불어 기대감을 갖기에 충만한 것이었다. 그 누구들처럼 성공하여 만나기도 전에 사람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아닌, 생전에 빛을 발하지 못해 불우한 인생의 전조등을 비추는, `에리크 사티`같은 인물을 지켜보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 작품전반에 나직히 깔리는 그 희뿌연 인생의 음악에 조용히 귀기울게 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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