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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박정희
최상천 지음 / 사람나라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사실 우리에게 박정희만큼 유명하면서 또 그 만큼 덜 알려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토록 추대를 받는 인물이라면 그의 성장배경, 환경, 행적들이 꽤 알려질만도한데 우리의 대부분은 `박정희`하면 막연히 `카리스마 넘치는 독재자`, `경제 부흥의 아버지` 정도로 밖에는 떠오르질 않으니, 어디 수피즘이라도 신봉하는지 어떻게 이런 식으로 베일에 감쳐줘 있는 것일까?
그 사실은 꽉 막혔던 언론과 지식의 자유화가 꾸준히 추진된 여기에 이르러서야 그 나체가 살포시 드러난다. 이제까지는 언론통제라는 강력한 커튼 뒤에 몸 사리고 있던 박정희,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이제 그 커튼은 삭아 문드러졌다. 이제는 당신의 알몸을 감출데가 없소이다.
그 막막하던 커튼이 삭아내리며 우리의 코를 자극하는 `친일파`라는 냄새는 충격적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예사 친일이 아닌 아주 골수 친일의 자극적인 냄새. 하지만 솔직히 이 시대 군중들의 친일파에 대한 강도높은 적개심과 비난은 명분이 없다. 그저 해방된 편안한 시대에 태어나서 `이런 매국노들!` 하고 외치는 모습들. 하지만 실제 그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자기자신은 물론 그 누구도 어찌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아무렴.
그런데 내가 갑자기 친일파 동정론의 색채를 띄는 까닭은? 그 만큼 대놓고 그들을 비난할 것은 아니란 의미에서다. 물론 잘한짓도 아니지만 인간에게는 두려움이라는 본능이 있다. 그 본능에 굴복해 버린 인간에게는 미워도 용서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무서워서 친일했어요` 하는데 뭐라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잘 봐주려 해도 `인간 박정희`의 친일은 정도가 심했다. 특히나 <알몸 박정희>를 보고 있자면 심히 심장이 부담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알몸 박정희>는 박정희를 드러낸다는 공로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참고로서의 가치만 지닐 뿐, 사실명제로서의 가치는 지니기 힘들다. 아니, 지닐 수가 없다. 바로 객관력 상실이 문제다. 저자의 박정희를 싫어하는 마음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 `타도 박정희`의 전제 마음이 모든 독자들에게도 있을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이런 자세는 독자들에게 반감만을 일으킬 뿐. 이런 효과는 저자도 원하는 바가 아니였을터인데..
그리고 군데군데 비판가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망언마저 나온다. 그중, `일본을 보면 꼭 단세포동물을 보는 듯하다. 달랑 빨간 동그라미만 그려놓은 국기..... 밀어내기 밖에 없는 스모, 우르르 몰려다니고 줄줄이 따라다니는 꼬봉 근성, 소설이나 영화 하나로 전 국민이 울음바다가 되는 풍경, 보들보들하지만 어김없는 기계적인 태도, 모든 것이 단순성의 극치다.` 란 부분은 정말이지 저자의 단순성의 극치다. 이건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지 결코 사실이라 볼 수 없다.
이런 부분들은 참으로 아쉬웠다. 좀더 객관력과 공정성을 지녔다면 누구에게나 무난히 권할만한 책이 되었겠지만 객관력을 상실한 저자의 `나홀로 흥분 모드`는 차마 아무에게나 같이하자고 하기에는 거북하다.
박정희, 젊은 층에는 부정적 면이 많이 부각된다. 하지만 실제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에게는 정치야 인물이야 어떻던 `식량`이라는 궁극적 생존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영웅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양측의 조화로운 시선을 수용하기에는 <알몸 박정희>, 너무 한곳으로만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한곳으로만의 집중을 강요하기에는.....시대가 너무 변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