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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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Tv드라마를 보곤 한다. 사랑하는 두 남녀, 너 없으면 나 못 살아. 나 없으면 너 못 살아.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좋아해 그 둘은 결혼을 맘 먹는데, 하지만 왠걸? 알고보니 두 사람은 이복남매지간이란다. 풋. 이 대목에서 나는 그냥 웃는다. 복선없는 우연의 오남용.`3류 같으니`

허허, 그런데 어쩐 일인가? <달의 궁전>, 스토리만 놓고 보면 3류 표창장감이다. 전혀 연고가 없던 세사람이 어떤 일로 알게 되었는데 사실은 그들 모두가 가족지간인 3대라? 생각해보면 언젠가 Tv에서도 본 듯한 황당무계한 설정이다. 그 동안의 폴 오스터의 작품이 사건연계의 우연성으로 진행해 왔다면 이번에는 지나친 배경의 우연 설정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토리의 진행이 아닌 그 <달의 궁전>이라는 제목에서 의미가 돋아났다.

`달`, 한 때 인간은 달에게 참으로 순수했다. 보름달이면 소원을 빌고 달에서 방아 찧던 토끼가 그 소원을 들어주리라 굳게 믿던 마음. `엄마, 달보고 소원빌면 토끼가 들어줘?` `물론, 그렇고 말고.` 하지만 역시 인간은 불평의 화신. 왜이리 소원을 안들어 주냐며 기어이 따지러 갔다. 만나기만 하면 보자고 벼르고 올라 갔던 인간, 하지만 방아 찧던 토끼는 짐싸들고 이사갔는지 털끝하나 뵈지 않는다. 허탈해진 인간. 이왕온김에 `여긴 우리 정복지`라며 `탕`꽂은 깃발. 그 깃발과 함께 인간의 마지막 순수성도 `탕` 사라졌다.

<달의 궁전>의 시대배경은 인간 마음속에서 마지막 그 순수적 희망이 날아가버린 때로 시작한다. `드디어 인간이 달에 상륙했습니다. 세기이래 인간의 가장 위대한 업적입니다.` 대단도 하다. 마지막 희망의 꿈을 싹뚝! 잘도 잘랐으니. 토끼도, 달님도 없다는 걸 알고 멍한 그 때, 주인공 포그도 방황한다. 끝없는 방황의 구렁텅이. 이제는 희망도 없다.

<달의 궁전>의 묘미는 `방황`, 바로 거기에 있다. 지나친 우연의 설정으로 흘러가는 스토리이 꽁무니만 뒤쫓을것이 아니라 가끔 멈춰 이렇게 주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고 그 필요에 의의가 있다. 순수성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는 인간들. 돌아와서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극복처는 이제 없는 걸까?

물론 폴 오스터는 희망을 제시한다. `달의 궁전`에서 보았던 점괘. `태양은 과거고 세상은 현재고 달은 미래다.` 비록 주인공 포그가 달의 정복을 통한 상실의 때와 같이 방황했지만 결국 그 방황의 끝맺음은 달로서 이루어 졌다.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외치며. 결자해지라 했던가? 달로서 시작된 방황, 달로서 끝장을 본 것이었다.

단편적이고 개인적 편협한 시각에서 달의 의미만 부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스토리 흐름은 별로였다. 포그가 자기의 아버지의 소설을 보며 뭔가 불완전 하다고 했던 말. 그 소설 속의 소설이 가지는 불완전함과 작품전반스토리의 완성도는 일치한다. 그저 기억나는건 작품전반에 아스라이 깔려있는듯한 달빛의 몽롱함. 더해, 버려졌던 `토끼의 절구`에 방아질을 할 몫은 이제 인간자신의 몫으로 낙착되었다는 생각 뿐. 더 이상 머리에 영양분을 공급할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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