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를 덮은 지금. 나는 나도 모른체 또 해석의 메스를 양손에 쥐고 있다. 수술대 위에서 벌벌 떨고 있는 텍스트들. 살려주세요. 작가의 당부를 잊어 먹고 있었다. '저의 자식들은 겁이 많으니 제발 칼을 들이밀지 말아 주세요.` 부탁까지 하는데 들어주지.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 요즘, 산사람 소원도 안 들어주면 너무 인색하지 않은가? 그런데 솔직히 내 실력에 무슨 칼질인가, 한번 튕겨 본 것일 뿐.<겨울나기>는 이외수 작가가 비교적 초기에 창작한 몇 편의 단편을 실어놓은 책이다. 정확히는 5편. 여기서 우리가 차렷!주목! 해야 할 것은 `초기`란 단어다. 새싹의 파릇한 내음이 느껴지는 초기란 단어.비록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일지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 진정한 작가 `이외수`를 만나 볼 수 있다. 세련된 다이아몬드가 처음에는 그토록 뭉텅한 돌뭉치였을 줄 누가 알았으랴. 처음 본연의 모습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작품의 전반적 분위기는 무겁다. 비록 작가의 재기 넘치고 익살스런 문체에 힘입어 웃음을 던져주곤 하지만 그 웃음은 한 서린 웃음, 고독의 웃음이다. 대부분 작품들의 모태는 어렵고 곤궁한 한 예술가가 자기 내적자아를 찾기위해 고뇌하는 모습으로 나 역시 추측했듯 그 고뇌의 행로는 절대 순탄치 않다. 순탄했다면 애초에 고뇌할 필요도 없었다. 그 `순탄치 않음`이 `분위기 풍선`의 끈을 잡아 당겨 착 가라앉게 한다.내면의 고뇌를 안고 있는 주인공들. 괴롭고, 외롭고, 적막한 자기를 벗어나기 위해 내면의, 자기만의 `굿 판`을 벌인다. 무한의 자아와 접촉을 위한, 무한의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무던히 벌인다. `덩더쿵 덩더쿵`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굿 판은 절정에 치닫는다. 춤이 점점 격렬해진다. `덩더쿵 덩더쿵` 땀이 난다. 숨이 차오른다. 나른한 죽음의 빛이 보인다. `덩더쿵 덩더쿵. 덩더쿵 덩더쿵.` `쉬이~` 잠시 굿 판이 멎는다. 주위는 조용하다. 모든것이 적막의 담배를 뻐끔뻐끔 피고 있다. 마침내 육신은 자기자신들의 자아와 일치 되었으며 그 순간 굿 판은 막을 내린다.우리는 시대를 너무 만만히 그리고 의식없이 살아오고 있다. `그냥 되는돼로 사는거지 뭐.` `돈만 좀 벌 수 있으면 양심정도야. 양심이 밥 먹여 주던?' 각자의 자아들은 점차로 설자리를 잃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는 자기의 존재의식마저 점차로 잊어가고 있다. 거울 앞에 서보라. 얼굴만 비춰주는 편견의 여신, 손거울이 아닌 자기 전신을 비추어 주는 거울 앞에 당당히 서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삐까번쩍`한 옷들? `나 이뻐? 이쁘지?`하는 장신구들? `당신이 일류입니다.`라는 메이커들? 자기자신이 점점 옅어지고 있음을 발견하는 자, 몇이나 있을 것인가? 부끄럽고도 부끄러운 순간순간들.우리도 이제 굿 판을 벌려야 할 때가 왔다. 비용은 걱정치 말자. 자신의 입지를 잃어버린 자아들이 자기 몸을 팔아서라도 굿 판을 마련해 놓았다. 이제 무당만 오면된다. 모두들 눈을 떠서 굿 판의 무당으로써 참여할 때가 왔다. 때가 왔다. 때가 왔다. 징을 울려라. 춤을 춰라. 굿 판을 벌려라. 덩더쿵 덩더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