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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의 삶은 우연과 필연의 끊임없는 교차로 이루어져 있다. 우연이 필연인듯, 필연이 우연인듯 보이는 만화경 같은 거울의 시선속에서, 우리는 느끼지를 못하고 있을 뿐, 그 둘의 공존의 회오리 속에 어지러이 널부러져 산다. 빙글 빙글 어지러운 세상. 그 빙글 거리는 어지러움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을때 바람막이로 `휭` 나타나는 우리의 구세주 폴 오스터.
<거대한 괴물>은 작가의 가장 빼어난 대표작으로 꼽힌다. 나로써는 동일 작가의 <우연의 음악>보다는 진행의 흥미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추리,탐정,논리의 설계도로 이루어진 그의 미로를 요리조리 빠져나오는 흥미, 그 미로의 통로마다 설치된 문을 열지 않고는 조바심으로 안달이 나는 기대감들, 그의 설계도는 여전히 하자가 없었다. 각각의 설계도에 따른 상대적 평가차이 였을 뿐 절대적 흥미면은 KS다. 혹 만족하지 못하면 AS도 될런지?..
<거대한 괴물>은 직역 그대로의 Giant Monster가 아니다. 처음 접할때 커다란 `고질라` 한 마리라도 나오려니 생각하면 작가 땀난다. <거대한 괴물>은 Giant Monster가 아니라 Leviathan이다. 토마스 홉스가 `개인을 삼켜버리는 거대한 권력`이라 말한 그 Leviathan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개인`이란 개개인이 자기 자신의 삶을 결정해 나가려는 의지로 변장을 했고 `거대한 권력`은 불확실특별시 세계구 성채에서 무수히 쏟아 붓는 우연의 포탄들로 변태를 했다. 의지와 운명과의 지루한 전쟁터. 멍한 머리도 대하다가는 포탄 샤워를 받기 딱 좋다. 조심하라.
전쟁터를 잠시 벗어나 보자. 길거리를 걷다 우연히 주운 돈으로 복권을 샀다가 `대박`을 터뜨리고, 서로 별 다른 호감이 없는 한 쌍의 남녀가 우연찮게 자주 마주치다 결국은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헤어졌던 애인이 어느날 갑자기 나의 가장 친한친구 애인으로 `쿵`하고 나타나는 일상생활의 일들. 우리는 이런 지극한 일상생활에서도 복병 `우연의 회오리`와 맞닥들인다. 버텨보려는 우리의 시도는 애처롭다. 조만간 버티던 우산은 뒤집혀 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괴물>은 그 위험한 복병에 철저히 자기만의 의지로 맞서 보고자 하는 인물의 삶을 나타내 준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우리 또한 알게 모르게 그 괴물과 싸웠다는 것을 깨닫고 또 대부분이 벌써 그 괴물의 발밑에 두손들고 납작 눌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연 그 괴물의 발밑에 수장되어 서서히 썩어가는 것이 옳은 삶일까? <거대한 괴물>. 멍한 눈으로 흥미만 찾던 둔탁한 머리를 잘도 유인해 퍽!! 일격을 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