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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진중권. 이 이름 석자면 아~하고 떠올린 사람, 그리고 치를 떨 사람또한 많을거다. 그가 이 책에도 사람들을 아~ 또한 으~ 하는 감탄사를 내놓게 한다.
진중권의 독설적이고 전혀 우회적이지 않은 그 비판을 처음에는 통쾌해하고 `그래. 맞아!`하고 맞장구를 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 아닌 부분이 많다. 그가 비판을 하고 칭찬을 하는데 있어서의 동의문제가 아닌 그의 문제제기 방식과 비판방식에 큰 오류점이 있어서다.
몇가지 예로, 그는 너무 비약적인 예를 쓴다. 한쪽에서는 `무분별하게 무엇을 하면 옳지 않다.` 주장한다. 뭐든 무분별, 남용하면 좋을거 없다. 그런 논리를 굳이 말로 표현한거 조차 필요없을 정도다. 하지만 진중권씨는 마지 `무엇을 하면 옳지 않다.`라고 들은사람처럼 행동한다. 앞에 아주 중요한 의미의 `무분별한`이라는 수식어는 무시한다. 그런식으로 나오는 행동에 사람들은 `과격하다.``통쾌하다`라고 칭할지 모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황당하다.` 그리고 너무 자기 유리한 쪽으로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물론 자기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한 표현논리겠지만 그것이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지나치게 드러나게 함은 좋지 않다.
가령, 사형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 난 이 사형제도 찬반여부에는 별로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진중권씨의 글을 읽고 있자면 괜히 사형제도에 찬성 하고싶다. 물론 인간, 그리고 공동사회체가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데에는 반대하는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무조건 자기가 반대하기위한 안좋은 점만 부각한다. 자기이론을 맞게 가려면 그럴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독자분 계실지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진중권씨는 자유 민주주의 한계부분을 언급할때 그것을 비판하려면 장점또한 먼저 알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즉, 한쪽 면만 보는것은 잘못됐다는 의미겠다. 하지만 진중권씨는 사형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과연 자기 가족을 아무 이유없이 걸리적거렸다는 이유로 살인을 해버린 죄인이 눈앞에 있었더래도 그런 생각이 나겠나 싶다.우리가 사형을 하게 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공범이라고 우리의 무덤덤함을 비판하지만, 정녕 억울하게 죽은 그 사람이나 그 가족의 비애같은 것은 전혀 신경안쓰는 그 무덤덤함도 같은 부류의 공동체적 공범이다.
그리고 한가지 진중권씨의 특징중의 하나이지만 `억측`이 너무 많다. 찬성, 반대에 대한 문제제기. 거기에 비트겐슈타인까지 들먹이면서 자기 논리를 더욱 깎아 먹는다. 예로 `나는 노동자 파업에 반대한다.` 라는것은 벌써 동의한 헌법에 대해 다시 일침을 가하는것으로 상대방의 인권을 침해라는거란다. 그럼 그동안 사상의 자유를 부르짖는 자기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반대`라는 단어를 표현했을 뿐이다. 거기에 비트겐슈타인을 꺼낸 손해를 본다. 그가 뭐랬는가? 결국은 언어의 문법적 오류때문이라고. 반대라고 국어사전에 정의된 그 의미를 쓸것이 아니다. 완곡히 `나는 노동자 파업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 이렇게 해버리면 완전 의미가 달라지는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것을 왜 그렇게 독설인가? 그리고 자기 자신은 자기의 글에 다른 작가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그 사람 생각 참 웃기고 말도 안된다고 한다. 설사 말이 안되도 사상의 자유를 갈망하던 사람이 남의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려는것은 인권침해 아닌가?
결론적으로 이런 사고를 가진 분들은 이 책을 피해야 할 성 싶다.
1. 보수에 대해 어느정도라도 동의하는 마음이 있으신분.( 이 책은 무조건 보수는 배척이다. 어떤 안좋은 현상은 무조건 보수주의 때문이라고 매도까지 한다.)
2. 남을 대놓고 깎아 내는것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시는 분.
3. 현 사회를 그래도 그나마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4. 모든 사회운동현상중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운동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5. 남의 말에 보통보다는 좀더 비판을 가하는 생각을 가지신분.
그렇지 않으면 추운겨울날 혈압올라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니 조심들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