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된 희망
폴리 토인비 지음, 이창신 옮김 / 개마고원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거세된 희망> & <맹자>



이 책의 저자이자 영국 유력 인간지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는 자신이 살았던 빅토리아 풍의 고급주택을 떠나 영국의 대표적 빈민가 글래펌파크 단지내에 있는 아주 허름한 임대아파트에 혼자 입주한다. 그곳에서 시간당 4.1파운드의 최저임금에 의지하는 생활을 하는 빈곤층의 삶을 직접 체험하기 위함이었다. 그 전과의 삶과 180도 다른, 인간이라면 누리고픈 그 어떤 희망조차도 ‘거세’된 삶에 뛰어든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병원잡역부, 빌딩청소원, 주방아줌마, 빵공장 노동자, 텔레마케터, 간병인으로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일하게 된다. 그녀는 어느 곳을 가던지 희망의 빛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지만, 결국 그런 것들이 다 부질없음을 느끼게 된다. 자기 자신을 개발하고 싶어도 지금이 노동이 너무 고되고 자기 개발을 위한 시간과 자본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아무리 일을 해도 빚만 늘어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녀만의 삶이 아니었다. 영국의 20%가 빈곤층이라고 하는데, 이들 또한 지극히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스스로 질문해보았다. 왜 이런 최악의 상황에 이른 것인가? 저자도 말했듯이 정치와 정치인에게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철의 여성’ 대처와 지금 현 블레어 총리의 노동,복지정책의 실패라 볼 수 있다. 영국정부는 결코 사회복지에 지출하는 금액을 줄이지 못했으면서도 예전보다 더 많은 빈곤층을 양산했다. 영국 전체적으로는 전보다 더 많은 경제성장이 있었지만, 그것은 부유했던 이들이 더 많은 부를 쌓음으로써 이루어낸 결과이다. 빈곤층의 실질적인 임금과 근로조건은 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한다. 이미 대처의 한결같은 노동자들을 죽이는 정책이 힘을 발휘한지 오래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해결책은 없을까?

그 답을 <맹자>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2500년전의 맹자시대에는 부국강병만이 천하지배의 잣대였으며, 패권 쟁탈이 정치와 통일시되던 전국시대였다. 부국강병만이 목적이 되었기에 각국은 끊임없는 전쟁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그로 인해 백성들은 고통의 나락으로 빠지게 되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인 농사일과 상업 등은 뒷전으로 미루어졌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지금 현 영국에서의 빈곤층과 맹자의 전국시대 때 백성들은 '고통'이라는 공통점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맹자>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 한 것이다.



<맹자>는 해결책으로 왕도정치를 주장했다. 맹자의 <양혜왕>대화편에 이런 말이 있다. “백성으로 말하자면 안정된 직업이 없으면 안정된 마음도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안정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남에게 알랑거리며 그 비위를 잘 맞추는 일, 또는 그런 사람)되고 사악하고 사치한 짓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마침내 죄를 저지르게 한 다음 쫓아서 처벌한다면 이것은 백성을 그룸로 긁어서 투옥시키는 것입니다.” 즉 백성들의 최소한의 생계보장과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는 정치는 범죄만 양산할 뿐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대표적 빈민가에 왜 불량배들과 마약중독자들이 많은지에 대해, 우리나라의 경우 가난에 쪼들려 저지른 범죄자들이 과연 그들만의 잘못인지에 대해 깊히 생각해 볼 문제인 듯 하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얼마전 기사를 보니 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소득 분균형이 심한 나라라고 한다. 특히 전체 빈민층 국가에 속하는 399만명 가운데 빈곤 탈출에 성공하는 비율이 6%에 불과해 370만명은 가난을 대물림할 수 밖에 없다는 통계결과가 나왔다. 요즘 실업률과 범죄율이 늘어만 가고 있다. 카드 빚 등의 돈문제로 인한 자살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국민연금미납으로 인해 재산을 압류당하는 등의 문제로 인해 서민이 얼마 전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국민연금 없애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고칠 부분은 다분한 듯 하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99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보장 지출이 영국은 22.8% 인데 한국은 5.3% 라고 한다. 현 한국은 영국보다 더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거세된 희망>을 통해 본 영국의 상황은 남의 애기만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 때 그 당시 당선되기 힘들꺼라고 예상했던 노무현 후보가 왜 당선됐다고 생각하는가? 그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며 고생을 겪었기에 이회창 후보보다 서민의 생각을 깊히 헤아릴 수 있는, 다시 말해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이제 정치, 정치인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안되면 맹자가 말했던 것처럼 그들을 쫓아낼 수도 있어야 한다. 개인의 노력여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을 단절시키는 정치 또한 결코 무시 못할 것이다.


2500년 전 백성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백성 모두가 자신의 선한 성품을 살아가게 함으로써, 이 어려움을 해결하자고 주장했던 맹자의 그 외침이 바로 내 앞에서 들리는 듯 하다. 더 나아가 그가 제나라 선왕 등 그 당시 많은 나라의 임금에게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들은 이가 없었던 장면이 오버랩되며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말하는 듯 하다.



p.s 국민연금, 비정규직 등의 서민과 실질적으로 관계된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대처하는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써봤습니다. 정치인들을 욕하고 외면하는 서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정치에 아예 관심을 끊은 이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선거철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정치에 더 관심을 갖아야 되지 않을까요? 백성이 있기에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거세된 희망에서 탈출할 길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과 서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행복한 세상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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