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반양장)
트리나 포올러스 지음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타인에게 희망을 -


이 책은 애벌레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꽃에 대한 글은 거의 언급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런데 왜 책제목이 ‘애벌레에게 희망을’이 아니었을까?  애벌레처럼 자신의 자아를 찾고 자기 자신에게 희망을 가져야만, 타인으로 비유된 꽃들에게도 희망을 준다는 것이 이에 대한 답변이자 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럼 이제 우리의 상상력에 호소하며, 질문하고 토론거리를 만들어주는 이 책의 중점에 맞춰서 글을 써볼까 한다.


처음에 “매일 먹기만 하면서 피둥피둥 살찌는 것 말고 더 값진 삶이 있을거야”라고 주인공인 줄무늬 애벌레가 말하며 불확실한 애벌레 기둥으로 향한다. 거기서부터 이 책의 질문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왜 떠났을까?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그럴 수도 있고, 뗏목을 타고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던 노르웨이 출신의 토르 헤위에르달처럼 미지의 대한 호기심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줄무늬 애벌레가 그렇게 가고자 했던 애벌레기둥에 오른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애벌레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벌레기둥의 꼭대기에 올라가고자 한다. “자 올라갈 수 있는 건 너 아니면 나 둘 중의 하나 뿐 이라고” 말하면서 줄무늬 애벌레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노랑 애벌레의 머리를 짓밝고 올라서는 장면도 나온다. 심지어는 그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애벌레기둥에서 떨어져 죽는 다른 애벌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작가는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자기 자신을 알지도 못한 체 누군가가 하기 때문에 하는 일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짓밟으면서 하는 일들은 허탈감과 공허감만을 준다는 것을 말한 듯 싶다.


그렇다면 그 애벌레기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원을 다니지 않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전에 내가 아는 초등학교 선생님한테 “학생들 중 학원가는 아이들이 몇 명 정도 되요?“라고 물어 본적이 있는데, 10명중 8명이 학원을 간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수가 하기 때문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렇듯 애벌레기둥도 남이 하기 때문에 나도 해야 된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애벌레기둥을 통해 점점 획일화되가는 우리의 모습을 암시적으로 전달해 주는 것 같다.


이렇듯 ‘꽃들에게 희망을’은 독자의 상상력에 호소하며 줄무늬 애벌래를 통해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시은소 교회 교재인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니’라는 1과 교재내용이 생각난다. 거기에 나오는 에녹과 같이 평범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을 때 네 이웃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자신에게 희망을 갖고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타인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는 듯 하다. 


국제여성운동단체인 '그레일' 회원으로 14년 동안 공동 농장에서 일하면서 우유를 짜고 채소를 재배하며, 성경 구절을 쓰고 성가를 부르며,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조각품을 만들어 팔고 있는 이 책의 저자 트리나 포올러스도 에녹과 같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기에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나에게 다가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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