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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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신비롭고 따숩고 귀엽게 느껴진다. 고래의 이미지가 그렇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포유류이자 바다의 수호자, 영리하고 귀여운 모습. 돌고래, 벨루가, 아기 범고래 등등

검은 바다에서 거대한 몸집이 튀어 올라 물기둥을 뿜어내며 수많은 배를 침몰 시키고 큰 입을 벌려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괴물의 모습은 까맣게 잊고 만다.

그러니 일단 고래에 관한 이야기라면 읽어보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모비 딕]


 

 

1891년 뉴욕 포스트 지에서 '해양 모험소설가'로 지칭한 허먼 멜빌의 소설이다.

이 책에 실린 허먼 멜빌 연보에서 보면 작가는 20살 때 급사로 처음 배를 타게 되고 21살에 포경선 아쿠쉬넷호에 취직을 한다. 24세에는 해군이 되어 남태평양을 항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배를 탔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들을 집필한다. 그중 하나가 [모비 딕]이다.

물론 해양소설이라고 해서 바다의 이야기만 나온다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테지만

해양소설을 쓰려면 바다에 관해 분명히 알아야 할 것들이 있을 것이다.

직접 배를 타지 않고는 모르는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능력이야말로 작가의 장점이라고 보인다.

 

 


작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책 [모비 딕]

책을 처음 받았을 때 포경선과 거대 고래에 관한 이야기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두꺼울 줄은 몰랐다.

이 책에도 쓰였듯이 세 권 분량의 책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바다, 고래, 포경선과 선원들. 고래 한 마리와의 싸움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많은 분량이 있을 수 있나 싶겠지만 주인공 '이슈메일'이 피쿼드 호 (선장 에이해브)에 오르기 전에 퀴케그(야만인)과 친분을 시작하는 과정까지도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만큼 매 상황을 섬세하고 자세하게 설명한다.

보통은 자세히 말하면 지루해지기 십상인데 이 모든 이야기들이 '이슈메일'의 시점으로 쓰여서 정말 누군가의 모험담을 듣는 것처럼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각주까지도 아주 상세하기 때문에 책이 두툼해서 빠르게 읽기는 어렵다.

 

피쿼드 호에서 쫓는 고래는 알비노 향유고래인 '모비 딕'이다. 고래의 이름이 소설의 제목.

실제로 거대한 수컷 알비노 향유고래가 포경선을 침몰 시킨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난폭한 고래의 이름이 '모카딕' 이었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모비 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거대하고 사납다는 좋지 않은 의미의 이름으로 보인다.

'모카딕'에 관한 이야기를 알기 전에는 알비노 향유 고래로 설정한 것에 대해서 그저 '알비노'라는 신비감과 거대한 크기가 주는 공포나 압박감 등을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 실존 고래가 있다니 늘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고 할 수밖에.

책의 뒤표지를 보면 이 책에 대한 설명으로 성경과 그리스신화 인물들이 주요 모티브와 알레고리로 작용한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기독교 사상이나 당시의 시대상, 작가가 숨겨놓은 장치들보다는 고래와의 싸움, 거친 바다, 두려움과 광기 등 1차원적으로 읽었다.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책을 다 읽으려면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모든 활자와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쓰지 말고 '이슈메일'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있는 듯 휘리릭 읽어가다 보면 두툼한 책도 어느새 끝이 난다. '이슈메일'과 나의 모험이 끝이 났다.

인간과 고래의 싸움에서 승자는 없었다. '이슈메일'의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아니, '허먼 멜빌'의 기록.

내가 읽은 [모비 딕]은 작살 하나로 바다의 주인과 맞서 싸우는 나약한 인간들의 모험 이야기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저 욕심으로 평화롭게 바다를 누비는 고래들을 공격하는 무자비한 인간들로부터 그들의 터전을 지키려는 고래 한 마리의 영웅담이기도 하다.

이 책이 출간될 때의 혹평을 쏟아내던 분위기보다는 좀 더 단순하게 이 책을 즐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현대지성 [모비 딕]의 또 하나의 즐거움 - '레이먼드 비숍' 목판화 일러스트

고전에는 그에 맞는 삽화가 중요한데 책의 내용과 목판화 일러스트가 굉장히 잘 어울린다. 고전적이며 단순하고 깔끔한 목판화의 느낌이 섬세한 책의 내용과 상반되면서 균형이 아주 잘 맞는다. 상상의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이 함께 있어 좋다.

​​

**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실제로도 당시 많은 포경선들이 고래를 잡으러 다녔고 기술이 좀 더 발전한 뒤에는 거의 멸종 위기라고 볼 수 있을 만큼 많은 고래들이 잡혔다. 아직도 일본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는 포경 행위를 하는 연구 목적이니 전통이니 하면서 대대적인 포경을 절대로 멈추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이제 고래들을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이 고래를 좋아해서 [모비 딕] 소설까지도 재조명되는 것 같다. 가끔 드라마의 흥행으로 아주 작은 연결고리라도 있어 보이는 소설이 '역주행'하는 것을 보면 씁쓸할 때가 있다.

** 일본 만화 [ONE PIECE]에 '라분'이라는 고래가 나온다. 어느 종인지 나오진 않았지만 향유고래를 닮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모비 딕]을 읽다 보니 '라분' 생각이 종종 났다. 그러고 보니 만화, 소설, 영화 등등에서 고래는 참 다양한 소재로 쓰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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