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 인간의 잔혹함으로 지옥을 만든 소설
빅토르 위고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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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 이란? 장발장, 훔친 빵, 탈옥수, 뮤지컬!

 

책이나 뮤지컬을 못 봤어도 아주 익숙한 그 이름 장발장. 너무 익숙한 나머지 '흥덕 장씨' 의 장발장씨 같은 느낌.

 

그 장씨 아저씨가 가난으로 인해 빵을 훔쳐 징역살이를 하게 되었고 억울한 옥살이에 탈옥을 시도하다가 ..

 

아... 시도하다가.. 까지 밖에는 모르겠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고 다른 책에서 읽어본 내용인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구나.

 

장발장님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가. 그 빵은 대체 무엇이었나. 그는 결국 어떻게 되었나.

 

 

 

 

책의 제목인 레 미제라블. 왜 장발장이 아니고 레 미제라블일까.

 

장발장의 이야기임에 틀림없으니 장발장이라고 하면 됐을 텐데.

 

책을 받고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 나니 혹시 내가 아는, 예상하는 내용과는 다른가 싶어서 제목부터 찾아봤다.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 하고 불러서 하나의 단어인 줄 알았는데 '레 v 미제라블' 이다.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 : 불쌍한 사람들. 이라고 검색되는데

 

단어 자체로 사전을 찾아보면 Misérable은 매우 가난한, 극빈의, 비참한, 비루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알겠다.

 

불쌍한 장발장, 가련한 코제트, 비참한 팡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불쌍한 사람들.

 

그리고 2021년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레 미제라블.

 

 

 

 

차례로 보면 시작은 '팡틴' 이지만 어쩐지 허름한 차림의 남자와 성인과 같은 주교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발장의 이야기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가난한 누나와 누나의 일곱 아이들을 위해서 빵을 훔친 장 발장.

 

소설 속에서도 나오듯 닥치는 대로 일했으나 입에 풀칠하기에도 바빴던 그들의 삶.

 

어린 일곱 조카를 위해서 빵을 훔쳤고 감옥에 가게 되었으며 누나와 어린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을 알게 된 후 탈옥을 시도한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2군데 있는데

 

하나는 장발장이 빵을 훔쳐서 5년의 징역형을 받은 것은 너무나도 억울하지만 계속 탈옥을 시도해서 14년이라 가중처벌을 받게 되어 결국은 빵 하나로 19년의 징역살이를 했다는 것이다.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어도 탈옥을 하지만 않았더라면 누나도 조카들도 더 빨리 도울 수 있었을 테고 극악무도한 흉악범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텐데 잡힐 것을 알면서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래야만 했을까. 탈옥을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둘째로는 소설 속의 모두에게 곰팡이 같은 존재인 '테나르디에'를 왜 살려두어야 했을까. 좀 더 비참한 꼴이 되었어야만 했다. '레 미제라블' 처럼 죽음보다 삶이 더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니 만일 작가가 그를 살려두어야 했다면,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비참하도고 비참한 꼴이 되었어야 했다.

 

 

그래. 권선징악이란 현실과는 먼 얘기인 것은 맞다.

 

 

우리가 흔히 알듯이 빵 하나로 19년을 살고 나온 장발장은 또다시 절도를 한다.

 

굶주림과 추위에서 구해준 주교님의 은식기를 훔친 것이다.

 

주교님이 재워준 대가로 돈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 은식기로 갑자기 엄청난 부자가 될 것도 아닌데 장발장은 그 식기를 훔쳐 달아났고 형사에 잡혀 주교님 앞에 끌려온다. 그때 주교님은 '내가 주었다'라고 하시며 은촛대까지 주신다.

 

 

 

 

그 일이 모든 것을 변화 시켰다.

 

 

책이 무척 두껍고 많은 인물이 나오고 여러 사건이 얽혀 있음에도 내가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첫 장 위주로 말하는 것은 이 일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전과자라고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잠도 재워주지 않고 따뜻한 수프 한 접시 주지도 않았을 때

 

비앵브뉘 주교만이 그를 도왔고 그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장발장이 더 이상 장발장이 아닌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장발장으로 책이 끝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도 만일 어떠한 기회가 있다면 바뀔 수도 있는 게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일하다 보면 자주 듣는 얘기가 '사람 안변해.' 라는 말이기도 하고 실제 겪은 바로도 사람이란 참 변하지 않더라.

 

그래도 어떠한 기회?계기?상황? 들을 만났을 때 변할 수도 있다. 장발장이 만난 그 주교님이 그를 변화시킨 것처럼.

 

 

아니 어쩌면 변한 것이 아니겠다.

 

장발장은 악인이 아니었다. 실제 빵을 훔쳤고 절도죄로 처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조카들을 위해서였고 누나와 조카들의 삶이 부서진 것을 알고는 탈옥을 감행했다. 그는 그 누구도 일부러 해하지 않았다. 주교의 은식기를 훔친 도둑임에는 맞지만 악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벽에 주교님의 집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던 것은 그의 내면에는 또 다른 장발장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지.

 

 

책을 읽는 내내 장발장을 응원하게 된다.

 

선과 악, 죄와 벌 이렇게 구분 짓지 않고 그 어떠한 어려움과 비참함, 고통이 있더라도 인간의 고결함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게 된다. 행복해지지는 못하더라도 불행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아 장발장. 빵을 훔치던 장발장은 지금도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들을 감싸주는 비앵브뉘 주교님을 어디에 계실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잔혹함으로 지옥을 만든 소설' 이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우리의 현실이 더욱 팍팍해서인지 지금보다 더한 지옥이었다라고 까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슬픈 얘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팡틴'과 같이 죽어가고 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간다면 그로 인한 영향은 여러 사람에게 미치게 된다. 우리 각자가 변화된 장발장이 되면 좋을 텐데. 작가가 말고자 했던 것이 지옥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하는 그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시대에 살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왜 자꾸 탈옥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더럽고 추악한 손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은데 말이지.

 

 

 

** 최근에 '꼬리에꼬리를무는 그날이야기'라는 프로는 보는데 그런 말이 나온다. "내가 스스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야 변하는 거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는 그 사람이 떠날 때 보면 알아요."

 

 

** 이제는 영화를 보아야겠다. 장발장 역에 휴 잭맨이 어울릴지 너무 궁금하다.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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