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새움 세계문학
조지 오웰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 '동물농장' 양들의 외침.

2019년 어느 밤 반쯤 깨어 있고 반쯤 잠이 든 상태로 팟캐스트에서 흘러나오는 [동물농장]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저 귀가 심심해서 틀어 놓은 팟캐스트라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공산당, 소련, 영국 그리고 돼지 책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 가 잡담에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난 왜 오래오래 이 책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잠결에도 '나중에 꼭 읽어봐야지..' 했었다.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이 쓴 책이라서 그런가.

[동물농장]이라는 제목이 흥미롭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책을 읽고 이렇게나 슬프고 안타깝고.. 절망에 빠지게 될 줄 미리 알았던 걸까.



[동물농장] 말 그대로 동물농장이다. 동물들만이 존재하고 그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농장.

줄거리를 적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감정은 슬픔과 옅은 분노였는데 책의 내용이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책을 실제로 읽어야만 알 수 있는 느낌이고 미리 내용을 다 알아버리면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그들의 특성 그리고 그들이 했던 모든 일들을 내가 읽은 대로 써버려도 될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조금은 얘기해도 괜찮겠지..?



[동물농장]의 첫 문장에는 "장원 농장" 과 " 존스 씨"가 나온다.

제목이 동물농장인데 장원 농장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의외였다. 존스 씨라니..? 동물들은 어디로 갔고...?

게다가 장원 농장이라니 이건 무슨 뜻이지?

책을 펴자마자 읽게 되는 옮긴이의 '일러두기'를 보면 '장원 농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별 뜻이 없는 Manor 농장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중요한 뜻이 담겨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장원 농장-동물농장'이라고 부르는 이 호칭 안에 담긴 뜻이 결국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것과도 같다. 존스 씨가 운영했던 'Manor 농장과 동물들이 운영했던 동물 농장'

이 얘기만으로도 알게 되는 사실. 본래 인간에 의해 운영되었던 농장이 인간이 없이 동물로만 운영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존스 씨는 자신의 농장으로부터 쫓겨났다. 그가 관리하던 동물들에 의해서.

반란. 동물들은 존스 씨를 몰아내고 농장을 차지했다. Manor 농장에서 동물농장이 되었다.



드디어 새로운 세상인 자신들의 농장에서 행복하고 편안한 날들을 꿈꾸며 7계명을 적었다.

리뷰의 맨 첫 줄, 양들이 끊임없이 외치던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가 이 7계명으로부터 나왔다.

농장에는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당나귀, 말, 소, 양, 개, 닭, 오리, 비둘기, 까마귀 등등 각 동물들이 바라는 세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 모두 두 다리로 살아가는 '인간'의 가축으로 혹사당하면서 사는 것을 벗어나고 하는 열망은 같았다. 이제 그들은 자유의 몸이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농장을 꾸려갈 수 있었다.

동물들 중 가장 똑똑한 돼지들이 머리를 맞댔고

말과 당나귀가 힘이 필요한 궂은일을 했다.

닭, 오리, 암소들에게서 얻은 알과 우유로 돈을 벌었다.

비둘기들이 주변의 농장들과의 연락책이 되었고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며 호위를 맡았다.

각자가 할 일들을 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그러나 존스 씨가 관리하던 농장에서 살던 때보다 나아진 것은 없었다.

변한 것은, 자유를 얻었고 스스로 일했으므로 전보다 상황이 나아졌다고 믿는 마음뿐이었다.

영국의 짐승들이여, 아일랜드의 짐승들이여,

온 나라와 지역의 짐승들이여,

황금빛 미래에 대한

즐거운 소식에 귀 기울여라.

조만간 그날이 오리니,

폭군 인간은 허물어지고,

영국의 비옥한 들판은

짐승들만 홀로 디딜 수 있을 테니.

고리가 우리의 코에서,

마구가 우리의 등에서 사라지고,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잔인한 채찍은 더 이상 철썩이지 않을 테니.

마음속에 그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부가,

밀과 보리, 귀리와 건초,

클로버, 콩과 사탕무들이

그날 우리의 소유가 될 테니.

빛이 영국의 들판에 비추고,

물들은 더 맑고

산들바람은 더 달콤히 불어올 테니,

우리가 자유로워질 그날에.

그날을 위해 우리 모두는 노력해야만 하네,

비록 그것을 이루기 전에 우리가 죽는다 해도,

소와 말, 거위와 칠면조들,

모두가 자유를 위해 힘써 일해야만 하네.

영국의 짐승들이여, 아일랜드의 짐승들이여,

온 나라와 지역의 짐승들이여,

황금빛 미래에 대한 즐거운 소식에 귀 기울여라.

>>> page 20-21 <영국의 짐승들>

힘들 때면 <영국의 짐승들> 노래를 몇 번씩이나 부르며

그래도 우리는 자유롭다고, 우리의 힘으로 농장을 일구고 있다고, 좀 더 열심히, 좀 더 수용적으로.

그러나 존스 씨가 떠난 자리에는 돼지들이 앉았다.

시작은 함께였으나 곧 계급이 생겼다. 동물농장이 되었을 때 7계명을 쓰고 혁명의 노래를 부르고 희망찬 미래를 꿈꿨었는데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두 다리 인간이 지배하던 시절과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인간의 자리는 돼지가 차지했다.

<영국의 짐승들>을 부르는 것도 결국 금지되었다.

결말을 말하고 싶다.

동물들의 죽음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어느 구절에서 실제 죽음을 목격한 듯 울었던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나는 책을 읽으며 마치 그 안의 동물들 중 한 마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말이 되어 돌더리를 날랐다가 닭이 되어 시장에 내다 팔 알을 낳고 있다가 책에 한 줄 자리 차리도 못하고 사라져버린 오리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나 또한 그곳에서 정직하게 낱알 하나까지 수확해서 창고에 쌓이는 것을 보며 뿌듯해했을 것이다.

어느 세상이든 '돼지'는 존재할 테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반란도 끊임이 없다.

그래서 슬펐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있는 것 같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 항상 존재하고 있고 그것은 세상이 앞뒤로 뒤집어져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말이 돼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양들이 돼지들을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

돼지가 될 수 없는 대신 어떻게든지 이해해 보려고 한다. 이 상황을 살아내야 하니까.

굶주리고 피곤해도 그래서 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도 어쩔 수 없다.라고 되뇌며 불행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지금의 내가 그렇고 과거의 내가 그랬고 미래의 내가 여전히 그럴 것이다.

돼지와 나는 다르다. 이 다름을 메꿀 방법은 없다. 그러니 돼지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행복의 세계로 가고 있으니.

이 시대의 국회의원들이, 과거 양반들이, 어느 국가의 어느 왕족들이, 지도자들이 다 그렇다.

그런 게 정말 슬픈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들만을 손가락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깨어있어야만 하는데. 그래야만 하는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지만 그래야 하는데. 양들의 외침처럼 무조건 외칠 수만은 없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맞고 틀리다. 네 다리든 두 다리든 언제든지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그걸 알아차리려면 깨어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아마도 [동물농장]의 복서나 양들이나 암탉이나 혹은 개들일 것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언젠가 7계명이 조용히 교묘하게 바뀌어도 제대로 알아차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고는 누군가 이렇게 말하겠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런 일이 우리 농장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게 믿지기 않아. 틀림없이 우리가 잘못해서일 거야. 해결책은, 내가 보기엔, 더 열심히 일하는 거야. 이제 앞으로 나는 아침에 한 시간을 꽉 채워 일찍 일어나야겠어."

>>> page 97 중에서

이 책은 소련의 사회주의를 비판, 풍자한다고 설명된다. 동물들의 대사, 동물농장에서의 전투들, 농장이 경영되는 방식, 결국은 부패와 공포만이 존재하는 동물농장의 상황 등 모든 것이 당시의 소련의 상황을 비꼬며 저격하고 있다.

하지만 넓게 보면 민주주의, 자본주의, 부족사회라 할지라도. 어디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책의 내용이 가볍고 대중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한없이 무겁다.

책의 분량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분량에 관한 이 책의 특징은, 옮긴이가 '이정서'라는 분이다.

예전에 이 분이 번역한 [이방인]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유명한 고전 중 오역이 된 것이 너무 많다며 이것을 조목조목 짚어주셨는데 [동물농장]도 '일러두기'를 보자마자 '어...? 혹시 그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1/4에 해당하는 분량이 '역자노트'이다. 앞서 번역되었던 [동물농장]의 오역이 꽤 많은 듯하다.

사실 해외 작품들을 보다 보면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꽤 있긴 하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분들 중에는 좀 더 나은 번역본을 찾아서 출판사별로 책을 찾아보거나 어느 번역이 더 매끄러운지에 대해 비교한 글을 올리기도 한다. 나도 가끔 그런 글들을 찾아본다.

그래서 자칫 지나칠 수도 있는 타 출판사/타 번역가의 오역에 대한 지적이 나로서는 반갑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 틀림이 없으니.



** 장원 : 유럽의 중세기에 귀족이나 사원에 딸린 넓은 토지. 봉건 제도에서의 토지 소유의 한 형태이다.옮긴이의 말처럼 단순히 '매너 농장'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정원 농장'으로 부르는 것이 좋은 듯하지만 장원 농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좀 생소하니 각주를 달아주면 좋을 듯. 아니면 '매너 농장(장원 농장)'으로 표기하던지.

내가 들었던 팟캐스트에서도 그냥 '매너 농장'이라고 불렀었다.

** 영어 외의 언어로 번역된 최초의 국가는 '남한' 이었다고 당시에는 반공 소설로 읽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희한한 데서 1등 하더라..

** 옮긴이 이정서님을 응원한다. 좋은 작품들이 좋은 번역본으로 더더 많이 발간되었으면 좋겠다.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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