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님의 침묵 (양장) - 1950년 한성도서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한용운 지음 / 더스토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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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page 9 님의 침묵 중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에 이 시가 실려 있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었고 '수능용 해설'로 한 구절 한 구절 뜯어가며 배웠었다.

교실의 공기는 졸린 아이들의 침묵으로 무거웠고 이 시에 대한 그 어떤 감정도 싣지 않은 채 교탁 앞에서 시를 읊어 내려가던 선생님, 항일시, 님=조국 이라는 공식, 이 시의 해석으로 올바른 것은..?이 쓰인 문제집 등이 기억난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제대로 읽어보는 [님의 침묵]



1950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이 고풍스럽다. 이 책을 소장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님의 침묵] 책을 처음 가져보는데도 오래전부터 나에게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가 쓰인 그때 그 시절을 좀 더 가까이 느낀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님의 침묵'으로 시작해서 '독자에게'까지 총 88편의 시가 실려있다.


이 많은 시들 중에 고작 '님의 침묵' 한 편 밖에 알지 못하다니.

대학을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들추던 교과서에 실려있었지만 '님의 침묵'은 첫 소절부터 나의 마음을 두드렸었다. 그런데도 한용운 님의 다른 시들을 찾아볼 생각은 이제까지 해보지 못했다. 시를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아직도 옛날 교과서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라도 [님의 침묵] 책을 읽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겠다. 늦었지만 더 늦지 않았으니.


이 책의 제목이자 한용운 님의 대표 시가 된 '님의 침묵'



성인이 되어 여러 인연들을 만나고 헤어진 후에 읽게 된 '님의 침묵'은 정말 좋았다.

항일, 독립운동, 은유법, 상징, 불교 등의 해석들을 빼고 읽고 나니 담담하지만 애절하고 슬프지만 슬픔만은 아니었다.

그 당시 시인은 조국 위한 시를 지었다고 모두가 말하지만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시라고 해도 충분하다.

현대의 누군가가 썼다면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아름다운 시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스님이자 독립운동가의 시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다.


그러고 보니 이 시집은 몇 편을 제외하고는 '님'에 대한 시들로 가득하다.

사랑, 이별, 그리움, 기다림 등에 관한 이야기다.

시의 구조도 사랑하는 님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같다. 사랑 때문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써 내려간 일기 같다.

시의 구조를 잘 알지 못하지만 오래전 배운 기억을 끄집어 내보니 아마 이러한 시들이 '산문시'였던 것 같다.

노래하듯 읊을 수 있는 시는 아니지만 시 안의 담긴 마음은 금세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다소곳하고 구구절절한 시들이 어떻게 항일 시집이 된 것일까. 분명 사랑 이야기였다.

아무리 빗대어 썼다 해도 이 많은 시들에 '님'을 담아서 항일시를 쓸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한용운 님이라면 수많은 것에 비유법을 적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마치 여성의 마음인 듯이 표현했을 필요가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해석을 살짝 찾아보다가 어느 블로그 글에서 답을 찾았다. 시에 대한 나의 감상이 희석될까 봐 자세히 읽지는 않았지만 궁금해했던 부분은 천천히 읽어보았다.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가인 자신의 모습을 지운 것도 맞지만 아마도 [님의 침묵] 시집은 항일의 뜻을 품고 묶음으로 펴내려고 기획된 것이 아닐까 하는 글이었다. 그렇기에 들쑥날쑥한 비유가 아니라 일관성 있게 '님'이라는 소재로 시를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나도 동감한다.

'님의 침묵' 한 편이 아니라 [님의 침묵] 한 권에 독립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꾹꾹 눌러 담아 쓴 거라면, '님'에 대해 써 내려간 모든 글이 '조국'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왜 이 시집 한 권을 읽는 동안 각각의 시들이 다른 듯 낯설지 않았는지 말이다.


그런 님을 보냈지만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던 한용운 시인이 이 시집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님에 대한 사랑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뜨거운 독립운동가의 마음이 담긴 시집.

이 이중성이야말로 진정한 시의 아름다움이다.

이런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나는 그의 바람대로 아무런 슬픔도 없이 교과서 속의 '시 한 편'으로 이 시를 배웠다.

몸과 마음을 바쳐 미래의 우리들을 지키고자 했던 분들에게 이제 정말 좋은 세상이 왔노라 말할 수 없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무한한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한용운 님께서 지키고자 했던 조국과 사람에 대한 그 마음이 [님의 침묵]으로 남겨져서 다행이다.

결코 잊힐 리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page 10 님의 침묵 중에서



** 한용운 님이 출가한 스님으로, 법명이 '용운'인 것, 독립군 후보생들에게 총을 맞아 총알이 머리에 박힌 채 살아가셨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음에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을 반성 중이다. 알면 알수록 그의 생애와 그의 시 모두 위대함으로 다가온다.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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