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피노키오 - 191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카를로 콜로디 지음, 엔리코 마잔티 그림, 이시연 옮김 / 더스토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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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인형 ♬ 피노키오 ♬ 나는 네가 좋구나 ♬

파란 머리 천사 ♬ 만날 때는 ♬ 나도 데려가 주렴 ♬


[출처] mick님의 블로그


'피노키오'라고 하면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나무 인형의 귀여운 모습과 '피노키오 동요'가 떠오른다.

지금은 동요의 전체 가사는 잊어버렸지만 첫 소절만큼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 ♬

경쾌하고 밝은 동요의 리듬과 귀여운 동화의 그림체가 내가 기억하는 [피노키오]다. 말썽을 피워도 마냥 귀여운 피노키오와 가난하지만 인자한 목수 할아버지의 이미지. 그래서 거짓말을 하면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질 거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그다지 큰 공포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동화처럼 말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줄거리가 어땠었더라.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릴 적 일요일 아침 9시에 TV에서 해주던 디즈니 시리즈로 보았던 것 같은데.

목수 할아버지가 외로우셔서 꼭두각시 나무 인형을 만들었는데 갑자기 그 나무 인형이 사람처럼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너무 놀랐지만 평범한 아이로 키우기로 마음먹었고 피노키오를 학교에 보내주셨다. 그러나 거짓말을 일삼으며 놀기만을 좋아하던 피노키오는 할아버지가 사준 책을 팔아서 놀러 다니다가 나쁜 사람들에게 잡혀서 혼쭐이 난 후 정신을 차리고 착한 아이가 되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진짜 사람이 되었다. 이거 아닌가...???


맞나? 아닌가? 그래. 나야말로 정신 차리고 이제라도 진짜 피노키오를 읽어보자.



내 기억은 다 틀렸다. 할아버지와 말하는 나무인형, 코가 길어지는 마법, 진짜 사람이 된 나무인형의 이야기를 빼고는 엉망진창의 기억력이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피노키오=거짓말에 길어지는 코'는 책의 전체 내용에 비하면 거의 없어도 될 무관할 정도의 에피소드였다. 이럴 수가. 거짓말을 하는 어린이는 코가 점점 길어진다는 공포 요소가 착한 아이를 만드는 건데.


그림체도 완전히 다르다.

내가 읽게 된 [피노키오]는 피노키오 탄생 140주년 기념 오리지널 초판본 완역본! 원작 소설에 삽화를 그렸던 '엔리코 마잔티'의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동화 속의 동글동글한 디즈니식의 그림체가 아니라 옛날 삽화라서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지만 책을 읽을수록 책의 분위기와 잘 맞아서 좋았다.


엔리코 마잔티 (Enrico Mazzanti)

화가이자 기술자였던 아버지 알레한드로 마잔티의 영향을 받아 그림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883년 발행된 피노키오의 모험의 삽화를 통해 가장 섬세하고 독창적인 피노키오 삽화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 page 260 맨 마지막 페이지




[피노키오] 리뷰를 쓰려고 찾아보니 원제는 [피노키오의 모험, 꼭두각시 이야기] 였다고 한다. 로마 지역신문의 어린이난에 연재되었다가 인기가 좋아서 1883년에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본래 성인 도서로 출간하려고 했다고 한다. 어쩐지 내용이 강렬하더라니.




차례를 보면 피노키오가 부린 말썽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험이라면 모험이고 결국은 행복한 결말이 있지만 옛날 옛적의 동화들은 나의 상상을 늘 뛰어넘는다.

특히나 제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를 막 만들고 나서의 피노키오의 행동은 제페토 할아버지의 말씀이 틀린 것이 없다.


"못된 녀석 같으니라고! 꼭두각시를 만들어서 편히 잘 살 거라 생각했는데! 이론 곤욕을 당하게 될 줄이야! 이런 일을 미리 생각했었어야 했는데!"

>>> page 24 3장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의 탄생 중에서


나의 기억과는 달리 제페토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피노키오를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말하는 나무토막을 친구에게 전달받아서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었고 그게 바로 '피노키오' 였던 것이다.



그러니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를 만들지 않았어도 됐었고 만들었다고 해도 평범한 아이들처럼 키우지 않았어도 됐다. 그래도 제페토 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피노키오를 포기하지 않았다.

파란 머리 요정님도 제멋대로의 피노키오를 여러 번 용서해 주었다. 피노키오는 요정님이 하지 말라는 것만 하며 단 하나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요정이 누군데?"

"우리 엄마요. 모든 선한 엄마들과 비슷해요. 자신의 아이들을 많이 사랑하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이 아이들이 그들의 경솔함과 나쁜 행동들을 했을 때도 포기하기보다는 모든 불행한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사랑으로 도와주는 엄마 말이죠. ..."

>>> page 222 무서운 상어 배 속으로 삼켜진 피노키오 중에서


피노키오의 말썽들은 주로 제페토 할아버지나 파란 머리 요정님의 말씀을, 그러니까 피노키오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의 말은 듣지 않고 피노키오를 속이려고 하거나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말만을 믿는대서 시작된다.


그게 바로 나다. 나였고 나고 나일 거다.

내가 바로 피노키오였다. 피노키오의 진짜 공포는 거짓말로 코가 길어지는 게 아니었다. 피노키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는 것이 공포다. 나는 아직 진짜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어려서, 잘 몰라서, 친구라고 생각해서, 공부는 하기 싫으니까, 지금 놀아도 뭐든 되겠지.

수없이 많은 약속을 어긴다. 진짜 내 사람들은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지만 항상 잘못을 저지르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나를 포기하는 것은 바로 나였다.


[피노키오]를 읽는 내내 안타까워서 어쩔 줄 몰랐다.

피노키오야 그리로 가면 안 돼. 그들을 믿으면 안 돼. 그 말을 믿으면 안 돼. 좀 더 생각해 봐. 좀 더 노력해봐.

피노키오야 그 약속을 어기면 안 돼. 피노키오야 어서 돌아가.


피노키오는 말썽을 부리고 약속을 어길 때마다 죽을 뻔했었다. 그러나 피노키오를 변하게 한 것은 죽음의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에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분명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은 제페토 할아버지와 파란 머리 요정님이었다.

피노키오는 진심으로 그들을 걱정하며 새사람이 되었다. 그러고는 정말로 사람이 되었다.


동화는 늘 해피엔딩이다.


우리는 동화 속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도 돌아가자. 제페토 할아버지에게로. 파란 머리 요정에게로.


피노키오를 읽으면 알게 될 거다.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가 없다. 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당신이 7살이든, 14살이든, 24살이든.. 심지어 56살이든 말이다.


우리 모두가 피노키오처럼 태어나서 피노키오처럼 산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정말 사람이 되어 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벌은, 거짓말로 절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피노키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책으로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함께 반성하자. 당나귀가 되기 전에.



** 2019년 영화 [피노키오]가 올해 3월 18일에 재개봉했었나 보다. 책을 읽었으니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2001년 [A.I]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울면서 봤던 영화인데 [피노키오]와 연관이 있을 줄이야. 책을 읽고 나서 이 얘기를 들으니 '아...그래서!' 라는 장면들이 있긴 했네.



**내가 알고 있는 동화의 원작들을 나이 들어서 읽게 될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된다. 이런 기회들을 얻게 된 것에 감사하자.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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