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인생공부 - 대작가의 문장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 수채화 59점 필사의 발견
헤르만 헤세 지음, 김정민 엮음, 배정애 캘리그래피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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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었다. 잠들기 전에 휴대폰을 들고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어린 나이에 필사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필사의 좋은 점이 줄줄이 쓰여있었다. 문장력을 키워주고 글을 술술 쓸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당장이라도 필사를 해봐야지 했다. 글을 잘 쓰고 싶었고 내 머릿속의 하찮은 생각들이 좋은 문장으로 다시 태어나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언젠가는 해야지' 해놓고 여러 계절이 지나갔다.

헤르만 헤세의 글이 필사책으로 발간되었다고 해서 리뷰단 모집 글에 손을 번쩍 들었다.

 

만약 당첨이 된다면, 악필이라서. 시간이 없어서. 다음에. 언젠가는. 이런 변명들은 통하지 않을 테니 정말로 필사를 하게 될 거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늘 어렵다.

 

오오!! 당첨. 드디어 책을 받았다.

·필사의 발견· 헤세의 인생공부




책을 받았을 때 출판사에서 보내온 인사의 쪽지가 있으면 사소한 것이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책을 읽기도 전에 이 책과 조금 친해진 기분이 들고 출판사의 인사에 나도 '반가워요.' 라고 속삭이게 된다.

 

기분 좋게 책을 펼치면 엮은이의 서문이 나온다. 엮은이가 헤세의 글에서 느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85년의 삶, 굴곡도 많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많았지만 노년에는 헤세도 평화와 안식을 찾은 듯 정원을 가꾸고 토마토를 기르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 물론, 이 책에 실린 그림도 모두 헤세의 솜씨랍니다.

...

헤세의 소설과 시, 산문과 서간문 등에서 우리의 영혼과 삶에 등불이 되어줄 빛나는 문장을 간추렸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닿았을 때, 내 안에서 일어난 파동을 기반으로 헤세의 말을 재해석하기도 했습니다. 헤세가, 헤세의 글이, 헤세의 영혼이 그대에게도 닿기를 바랍니다.

>>> page 9 서문 중에서

 

아쉬운 점.

글과 그림이 모두 헤세의 작품이라는 점이 중요하지만 여기 실린 문장들이 헤세의 어느 작품, 어느 책에서 발췌되었는지도 써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따라서 그의 소설이나 산문집을 찾아서 읽을 수도 있을 테니까.

또한 엮은이가 재해석한 부분을 별도로 표시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엮은이의 감동이 더해져서 그 글이 더 좋아졌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엮은이의 감동에 동감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무엇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모든 문장이 헤세가 쓴 그대로인 것처럼 비치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 필사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헤르만 헤세가 쓴 좋은 문장'을 필사하는 것이 이 책을 선택한 사람들의 마음일 텐데요. 이 책은 엮은이님이 얼마나 재해석을 한 것인가요. 알려주세요. T^T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읽어본다.

 

필사를 하기 전에 책을 먼저 읽어보고 싶었다. 좋은 문장들을 읽으며 헤세의 그림들을 즐기고 마지막으로 필사를 해야지. 책을 읽으며 필사를 바로 시작하면 글씨를 틀리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만 가득해서 글과 그림을 충분히 즐기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필사를 위한 책이라 그런지 따라 쓰기에 부담 없는 정도의 분량이다.

한 페이지씩 담긴 문장들은 마치 시집을 읽는 듯하다. 실제로 Part 5는 헤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슬픔, 실연, 고통, 불안, 인간관계.. 인생. 우리가 인생을 살아내며 어려워하는 것들에 대한 글이다.

 

차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먼저 타인을 이해하기, 당신의 길을 가라, 네 뜻대로 살아라, 우정의 빛,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기, 제대로 된 직업, 화내거나 경멸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실연이 큰 인간을 만든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라.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라. 언뜻 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말들이고 알고 있어도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말들이라서 별다른 감흥이 없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역시 진정 좋은 글은 같은 의미의 말도 진부하고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의 글들도 그렇다.

 

 

 

이 책은 헤세의 문장들을 필사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저 그림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있다.

 

그가 그린 그림들은 이 책에 담긴 글들과 너무 잘 어울린다. 총 59점의 수채화로 산과 나무, 강과 들, 꽃과 길, 아담한 집 등이 그려진 이 그림들은 자연 그대로 단순하고 밝고 서정적이며 따뜻하다. 그의 노년의 모습이 그의 그림과 같다면 그는 정말 평화와 안식을 찾은 듯하다. 곳곳에 들어있는 많은 그림 덕분에 이 책에 실린 문장들이 때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너무 진지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쉽게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헤세가 직접 그린 그림을 함께 구성한 것이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이다.

 

 

 

글과 그림을 다 보았으니 이제는 필사를 시작할 시간이다.

 

필사할 글들은 컴퓨터 타이핑과 손글씨가 섞여있어 좋다.

정돈된 느낌과 다양한 필체의 자유로움이 함께 있어 그에 맞춰 따라 쓰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책을 받았을 때는 필사용 공책을 따로 만들려고 했었다. 깨끗하고 예쁜 책에 악필인 내가 손을 댔다가 틀린 글자가 여기저기 난무하고 수정액으로 몇 번을 고치고 고치다 결국엔 펜 자국이 번져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사각 거리는 느낌이 좋으니까 연필을 사용하고 싶었으나 분명히 옆 페이지에 연필 자국이 남을 테니 그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에는 분명 필사를 하기 위한 공간이 있었다. 왼쪽은 글, 오른쪽은 그림과 필사를 위한 여백.

고민을 하다가 책에 필사를 하기로 했다.

쓰고 싶은 공책을 챙기고 연필을 깎고 글씨 자국이 남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동안 너무 지쳐서 필사를 미루고 말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쓰다가 틀리면 X 표시를 하고 넘어가자. 필사를 하는 동안에는 딴 생각을 하지 말자. 너무 긴장하지도 집착하지도 말자. 천천히.

 

다행히 수정액으로 고친 글자는 단 하나였다. X 표시를 하자고 다짐했던 것은 그새 잊어버렸지만 뭐 어때. 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공을 들여 썼다. 나의 마음을 두드리지 않았던 문장은 굳이 필사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 쏙 들게 써 내려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이만하면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좋은 글들을 읽으며 위로와 용기를 얻기도 했지만

필사를 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 것, 다독인 것, 한 문장을 끝냈을 때의 뿌듯함. 이러한 것들도 어느새 마음의 정화에 도움이 되었다.. 아 필사는 이런 좋은 점도 있구나.

 

아주 오래전 인터넷에서 보고 감명받아서 가지고 있던 문장이 이 책에 있었다.

이 글을 필사하고는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page 112 Part 3 어떻게 살 것인가 중에서

 

올해 드디어 필사의 첫 발을 떼게 되어 기쁘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책들도 필사를 해봐야겠다.

필사를 하기 위해 마음에 드는 시집을 사봐야겠다.

악필이 나아졌으면 좋겠다. 필사용 공책도 준비하고 연필을 사용해서 사각거리는 그 느낌을 즐겨보고도 싶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정말 좋은 글이 술술 써지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page 44 Part 1 나를 더 사랑하기 중에서

 

 

인생 첫 필사 끝!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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