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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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개성 공단. 의문의 살인 사건. 그 진실!

간단한 책 소개만 보았을 때는 그다지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과 북의 이야기는 언제나 나에게 찜찜함을 남겼다. 본디 하나였다가 둘로 갈라진 것인데도 북한이라는 존재는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이질감이 든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나에게는 때때로 북한이 달에 사는 토끼나 화성에 사는 외계인과 같은 느낌을 주는데 희한하게도 당연히 통일되어야 하는 한민족, 잠시 떨어져 나간 우리나라의 일부라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이러한 혼란함은 다행히 대체로 잊은 채로 살아기 때문에 북한의 존재는 현실감을 점점 잃어버려서 어느 날 남과 북에 관한 영화,드라마, 소설 등을 보면 그제서야 '아 그래 저쪽에 또 다른 모습의 우리가 살고 있었지.' 라며 불편해지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살인 사건까지 더해지면 안타까움, 슬픔, 분노 등이 밀려온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볼 때처럼 말이다.


그런데 웬걸.

얕은 한숨을 쉬며 첫 장을 읽기 시작해서 책을 덮기까지 커피 한 잔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단숨에 읽어내려간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제3도시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남북 관계가 강조된 소설이 아니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남과 북이 아니다. 미국, 일본, 중국이 얽히는 거대한 음모도 없다. 남과 북은 하나다 라는 강요도 없다. 서로의 감시를 피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나누는 우정도 없다. 남쪽이 선이고 북쪽이 악이다 라는 전제도 없다. 그런 것들은 없다.


제3도시는 개성 공단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따라가는 추리 소설이다.

남과 북의 특수한 관계와 살인사건의 장소가 개성공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더욱 흥미진진해질 뿐이다.


점심을 먹고 혼자 밖으로 나온 강민규는 담배를 사기 위해 공장 근처에 있는 CU 편의점으로 갔다. 많지는 않지만 편의점이 몇 군데 있고, 놀랍게도 우리 은행 출장소도 있었다. 물론 달러밖에는 사용하지 않지만 말이다. 개성 공단은 북한 땅에 있고, 대한민국의 자본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유통되는 돈은 원화나 북한 돈이 아닌 미국 달러였다.

>>> page 52 2. 낯선 땅에서 중에서


개성 공단은 남과 북을 잇는 유일한 연결선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이익이 우선시 되는 곳이다. 개성 공단이 만들어진 목적 또한 단순히 평화적인 교류보다는 북한의 달러 & 남한의 정치 의 결합으로 보인다. 각자 필요한 것만 취하면 되는 곳.

그런 개성 공단으로의 출입과 그 내부 상황에 대한 묘사가 현실적이다. 갑자기 개성 공단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이 출입경사무소를 지날 때나 북한 근로자들을 마주했을 때. 개성 공단에서 서울 홍대까지의 거리를 실감했을 때나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느 중소 도시를 보는 듯한 풍경들을 볼 때. 이런 것들을 마주할 때의 주인공의 묘한 기분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


개성 공단에 들어가려면 특별한 곳에서 국정원 직원에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통일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영상을 보는 것으로 사전 교육은 끝이었다. 반세기 넘게 대치 중인 북한으로 가는 사전 준비가 고작 그 정도라는 사실에 강민규는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 page 19 1. 의뢰 중에서


입출경 절차를 밟는 것까지 포함해서 한 시간 반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목적지를 향해 걷는 사람들에게 이곳이 얼마나 그곳과 가까운지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 page 62 2. 낯선 땅에서 중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개성 공단의 이미지와도 달랐다. 나의 상상 속에서는 좀 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곳에서 군대식 통제에 의해 기계적으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 어쩌면 몰래 감시를 하는 군인이 있을 수도, 포로수용소와 같은 분위기로 오로지 공장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것 같았는데... 간식, 야근, 뇌물, 횡령 등이 존재하다니! 그들도 사람이고 사람 사는 곳은 아무리 통제를 하여도 어딘가 비슷한 구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가 보다. 그러니 살인까지도 일어나게 되겠지.


물론 헌병수사관 출신인 주인공의 눈에는 낯섦은 잠시일 뿐, 개성 공단과 북한 근로자들도 그가 군복무하며 보았던 군대 조직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말이다.


 


작가는 개성 공단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커다란 밀실로 설정하여 추리 소설을 탄생시켰다. 기발하다.


이야기의 구조는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스포를 하지 않는 선에서 말하자면 더욱 간단하다.

탐정 강민규. 외삼촌의 부탁으로 개성 공단으로 위장 취업을 한다. 외삼촌 회사에서 원자재와 완성품이 사라지는 문제를 해결하려던 것인데 공장의 비밀을 캐던 중 회사 법인장이 갑작스럽게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강민규가 범인으로 몰리지만 남북의 정치적인 이유로 추방 명령으로 마무리하려 하자 그가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나흘. 북측 호위총국 소속 오재민 소좌와 함께 남측 직원 살인 사건과 공장 내 물품 유출 사건을 조사한다. 강민규의 활약으로 범인이 밝혀지고 개성 공단은 이 모든 일을 뒤로 한 채 평화를 맞이한다.

 

살인-누명-수사-범인 검거-상황 종료 그리고 그 후.


일본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을 보면 항상 나오는 "범인은 이 안에 있어요!" 그리고 "바로 당신이야!" 의 대사처럼 시원하게 마무리되어 좋다. 반전의반전의반전을 심어놓지 않은 점도 깔끔하다. 범인을 옆에 두고 질질 끌고 가거나 주인공이 계속 헛다리 짚는 일도 없다. 억울하게 도망쳐 다니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지도 않는다. 탐정답다. 마음에 들어.

다만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마치 2권이 나올 듯이 여기저기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급하게 마무리되거나 중요한 얘기가 될 듯했는데 그냥 지나가 버린 소재들이 있어 보인다. 북풍회나 주인공의 과거 같은. 혹시 2권이 나오려나....?


좋은 점.

- 책 사이즈가 작은 편이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기 좋을 듯하다.

- 틈날 때마다 읽고자 했지만 일단 손에 쥐면 금세 읽힌다.

- 꼬이고 꼬인 내용이 없어서 읽기 편하다.

- 주인공 강민규 과장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시리즈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

- 영화로 제작해도 재미있겠다.

- 추리 소설 좋아하는 분들 어서 읽으세요.


어려웠던 점.

- 남과 북이라는 소재의 편견을 깨고 책을 펴기까지가 어려움. 나만의 문제.

- 작가가 미스황을 미워해요.

- 강민규 과장이 오재민 소좌에게 갑자기 말을 놓자고 해서 당황했다. 남과 북 모두 유교의 나라 아닙니까..?! 몇 년생인지부터 확인해야죠. 바로 친구하는 건 할리우드 스타일이라고요. 

- 반전으로 보이는 마지막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아니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인데요...?

 

**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본 것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왜지...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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