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것들 - 잘난 척 인문학,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김대웅 지음 / 노마드 / 202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온갖 주제들이 튀어나오곤 한다.

"야.. 커피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처음 마셨을 때는 쓰기만 했을 텐데 누가 처음 마셨고 왜 계속 마셨을까?"

"고층 빌딩도 좋지만 이러다가 조만간 대기권 밖으로까지 올라가겠네. 아마 최초의 고층 빌딩은 미국에서 지었겠지? "

"담배 처음 만들어 핀 사람 진짜 만나서 걷어차주고 싶다. 뭐가 좋다고 쓸데없는 거에 손을 대서 아직도 이 난리냐"

"이제 동물원은 점점 없어지는 추세라던데 정말 다행이야. 어릴 때는 몰랐는데 동물들 너무 불쌍해."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다 보니 모든 것이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휴대폰을 들고 손가락 몇 번 움직여서 감자, 고구마, 설탕, 소금 등을 대량으로 살 수 있고 한겨울에도 어디서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 침대에 누워서 편하게 영화를 보고 그 영화는 빔프로젝터나 벽에 걸린 큰 티비, 태블릿, 휴대폰 등등 다양한 형태로 선택해서 볼 수 있다. 세탁기와 더불어 건조기까지 필수 가전이 되어가고 있다. 동물원으로 가서 사파리 열차를 타면 기린을 만져볼 수도 있다. 멕시코산 바나나와 캘리포니아산 자몽이 대한민국 마트에 넘쳐난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나서 어떻게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지 몰라도 상관은 없다. 잠시 궁금증을 가질 수는 있지만 금세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감자칩의 유래보다 감자칩이 맛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니다. 몰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우리가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것들이 아무리 다양해지고 아무리 최첨단이 되어도, 그래서 원형이 거의 사라지게 되어도 그것들의 시작. '최초'는 늘 궁금하고 흥미롭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좋다.

이 책을 꼭 읽어봐야 할 이유다.



이 책의 장점들

1.의, 식, 주 - 3부로 나누어 현대인에게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것들의 최초를 다룬다.

총 132개의 내용 모두 우리가 궁금해할 만한 것들로 알차게 구성되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함이 없다.

'의' - 웨딩드레스, 결혼반지, 파자마, 블루진, 와이셔츠, 수영복, 넥타이, 가발, 구두, 지퍼, 화장 등등

'식' - 오렌지, 파인애플, 참깨, 옥수수, 감자, 고구마, 샌드위치, 햄, 라면, 초콜릿 사탕, 술, 커피, 코카콜라 등등

'주' - 교회와 성당, 시장, 시멘트와 콘크리트, 아파트, 호텔, 백화점, 동물원, 카페, 펍, 도서관, 에어컨, 침대 등등




2. 각 이름에 대한 어원을 알려주어 그것들이 탄생하거나 발견된 이유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ex) ... 그리스 신화에서 샌들은 인간을 저승과 불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Heel(굽, 뒤꿈치)와 Hell(저승, 지옥)은 어원이 같다. 그리스의 가죽 샌들인 '크레피스(krepis)'는 페르시아의 '페딜라(Pedila)'를 개량한 것이다.

>>> page 117 구두 발달의 일등공신은 예쁜 발 경연대회 중에서

ex) 세계에서 가장 큰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는 배스킨라빈스다. 1945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서 어바인 로빈스(Irvine Robbins)와 그의 매부 버튼 배스킨 (Button Baskin)이 창업했으며, 상표는 이들의 성(姓)을 따온 것이다.

>>> page 286 미국으로 건너온 아이스크림의 진화 중에서

ex) 커피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검은 음료'라는 뜻의 카와(qahwah)가 오스만제국의 카베(kahve), 네덜란드의 코피(koffe)를 거쳐 1582년에 영어의 커피(coffee)가 되었다. 독일어로는 카페(kafee), 프랑스어로는 캬페(café), 한자로는 가배(珈琲)라고 한다.

>>> pgae 334 커피는 종교의식의 필수품 중에서

ex) 호텔의 기원은 '나그네'나 '손님'을 뜻하는 라틴어 hospes(호스페스)에서 비롯된 Hostale(호스탈레)로 원래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뜻했다. 이후 '병자를 치료하고 고아나 노인들을 쉬게 하는 병원'이라는 뜻의 Hospital로 변했고, 18세기 이후 상인과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는 영국에서부터 지금과 같은 뜻의 Hotal로 발전했다.

>>> page 436 현대인의 문화궁전, 호텔 중에서

3.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성경, 신화, 전쟁, 과학, 배경 사건 등 여러 각도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ex) 18세기 런던에서는 법정 변호사의 매우 값비싼 가발이 자주 도둑맞았다. 가발 도둑은 바구니에 작은 소년을 담아서 어깨에 짊어지고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 가발을 훔쳤다.

>>> page 104 기독교도의 금지 1호였던 가발 중에서

ex) 1996년 맥도널드 햄버거가 인도에도 진출했을 때, 그들은 소고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마하라야 맥(Maharaja Mac)'이라는 양고기나 닭고기, 물소고기 등으로 대신했다. 특이한 것은 같은 소이면서도 물소는 죽음의 신 야마(夜摩; 염라대왕)이 타고 다니는 동물로 여겼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page 249 힌두교는 왜 소를 신성시하는가 중에서

4. 각 이야기마다 우리나라 상황을 함께 설명하여 좀 더 친숙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ex) ...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英親王)과 결혼식을 올린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 方子) 공주, 즉 이방자(李方子)다. 이후 1965년 당시 최고 톱스타였던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식에서 엄앵란이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만든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으면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 page 21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장례식의 검은 옷 중에서

ex) 우리나라에 백화점이 처음 등장한 때는 일본의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이 서울 명동에 지점을 개설한 1906년이었다.(1930년 이전한 곳이 지금의 신세계백화점이다.)

>>> page 445 도시인의 욕망을 표현한 백화점 중에서

5. 해당 이야기마다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가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저자의 사진도 깜짝 등장한다. ㅎㅎ

저자가 아무리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어도 많은 내용을 글로만 읽어야 했다면 다소 지루했을 것이다.

리바이스 광고, 넥타이 종류, 최초의 세탁기,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 1925년의 우리나라 동대문 시장, 런던 만국박람회 등등 저자의 설명에 따른 다양한 삽화가 들어있다. 특히 지도나 지금은 생소하기만 한 초기 제품의 사진이 없었다면 나의 상상만으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책이 꽤 두껍다. 그만큼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각 이야기가 길지 않고 읽기 편하고 책장도 잘 넘어간다.

최초의 것들을 읽고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 이집트 그리고 그리스·로마가 유럽에 끼친 영향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지만 그 외에도 아메리카, 남미, 중국, 인도 등의 고대 문명이 우리 모두에게 끼친 영향력은 정말로 대단하다. 아직도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그 당시의 종교를 믿는다. 인디언의 팝콘을 먹고 있으며 고대인들이 발견한 벼, 밀, 감자 등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들이 했던 방식으로 술을 만든다. 모든 방식이 대량으로, 편하게 변화했고 삶이 조금 더 복잡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알아내고 이루어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몇 천년 전인데 말이다. 신기할 따름이다.

- 오래전에 레바논을 갔었는데 그때 '아락'이라는 술을 사 왔었다. 아랍인들은 이슬람교 교리에 따라서 술을 마시지 않는데 '아락'은 전통주로 아직도 드문드문 판매하는 곳이 있는 듯했다. 아주 오래된 작은 상점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아락' 한 병을 사 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친구들을 모아놓고 자랑하며 술을 개봉했다. 향이 아주 진했다. 소주잔으로 한 잔씩 나누었지만 대체로 샴푸나 비누를 마시는 느낌이라면서 다들 기겁을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가끔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한데 이 책에서 '아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나 반가웠다.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역시 돌고도는 문명.

이듬해인 1274년 일본 정벌을 위해 안동에 식량기지를 설치했을 때 들여온 술이 바로 아라크인데,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소주(燒酒)를 '아락'으로 부르기도 했다.

>>> page 319 술이 금기인 아랍에서 탄생한 증류주 중에서

- 미국이 왜 지금의 강대국이 됐는지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많은 것들의 시작은 유럽이었을지라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원형의 대부분이 주로 미국에서 다듬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보다 늦게 시작된 오페라나 호텔, 카페, 패션 등과 같은 문화와 예술도 결코 미국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껌,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 문화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의지, 그리고 격렬한 경쟁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물론 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서 빼앗아 간 것들로부터 그들이 뿌리내리게 된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

-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불쾌했던 부분은, 일본이 우리나라에 해를 끼친 것을 말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겠지만 참으로 다각도로 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유럽과의 교역을 방해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도공을 일본으로 끌고 가서 기술을 훔쳐 가지 않나, 서양에서 우리나라로 유입된 최초의 것들의 많은 부분이 일제 치하에서 이루어져서 아직까지도 일제강점기가 한국에 도움이 되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게끔 만들지를 않나. 책을 읽는 내내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진, 눈부시게 발전한 문명을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우리도 스스로 발전했어야 했는데...' 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만을 보는 사이에 인류가 얼마나 많은 발전을 하고 있었는지를 다시금 보게 된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이루어낸 모든 것들이 자랑스럽지만 역시나 과거를 돌아보니 안타깝다.

- '최초'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윌리스 캐리어 (Willis Haviland Carrier). 에어컨의 창시자! 환경오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 이제 곧 여름이 다가오면 윌리스 캐리어님은 또다시 인류의 구원자가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잘난 척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을 뿐 다 외울 자신이 없다. 나 혼자 뿌듯해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이 책의 내용처럼 잘 설명할 수는 없을 테니 잘난 척은 물 건너 갔다. 대신 이러한 책을 읽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책을 추천해 주어야겠다.

** 오타나 편집의 오류가 없어서 보기 좋다. 군더더기가 없다.

** 책 표지가 고급스럽다. 하얀색 바탕이지만 좋은 재질이라서 쉽게 오염되지 않는다.

** 책이 두꺼워서 그런지 중간에 크랙이 생겼다. 책을 깨끗하게 보고자 하는 나로서는 속상할 따름 T^T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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