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가볍게 읽는 도스토옙스키의 5대 걸작선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종민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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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매년 올해는 꼭 읽어야지 했던 책 중 하나인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드디어 읽었다!!





[죄와 벌]이 명작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러시아문학이 인기가 많다더니만 그래서 그런지 많은 판본이 존재하는데 주로 상,하 또는 1,2권으로 구성된 것을 보아서 책을 읽기도 전에 두껍고 어려운 책일까 봐 걱정했었다. 꽤 긴 소설이라고 알고 있었으니 도서관 같은 곳에서 시간을 들여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부담감 말이다.

한데 기대에 부풀어 받아 본 [가볍게 읽는 도스토옙스키의 5대 걸작선 - 죄와 벌] 이 책은 흔히 볼 수 있는 아담한 소설책 사이즈로 1권이라 친구를 기다리며 커피 한잔하면서 몇 장 읽고 간식 먹으며 몇 장 읽고 잠들기 전에 몇 장 읽었더니 어느새 끝나 있었다.


다른 판본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책 소개에서 보았던 '분량 면에서는 가볍지만 원작에 충실하도록 엮은 이 책' 이라는 말은 틀림없을 듯하다.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은 후 원작에 기대어 오랫동안 그 내용을 곱씹어 봐야 할 책이다.






언젠가 책 소개 팟캐스트에서 [죄와 벌]을 다룬 적이 있다. 줄거리를 소개해 주는데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돼서 두 번이나 다시 들었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고 방송 특성상 너무 간략하게 전달하다 보니 생긴 일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등장인물의 어려운 이름과 더불어 줄거리를 짜기가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 스스로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라고 했다던데.


사건의 발생으로만 보면 아주 단순하다.

주인공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 가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이복 여동생을 죽인다. 계획한 살인이었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당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극심한 심적 고통을 느끼게 되어 결국 자수하고 시베리아에서 복역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다 사건이 발생된 것인지, 그 사건으로 인해 무엇이 변했는지를 보면 아주 복잡하다.

그의 어머니, 그의 여동생과 그녀의 두 남자, 그의 대학 친구와 주변인들, 그가 우연히 만나게 된 퇴역관리와 그의 가족, 예심판사, 경찰들이 등장하고 그가 그 끔찍한 살인을 결코 떨쳐버리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극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라스콜니코프'는 돈이 없어서 하숙비가 밀리고 여동생이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치밀하고 거창한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정말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을지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정말 그 자신이 맞는지 계속 혼란스러워한다. 특히 노파의 이복 여동생을 죽인 것은 계획에 있지도 않은 일이었다. 노파의 시체와 함께 있는 그를 보았기 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그녀까지 죽이게 된 것이다. 그가 전당포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기껏 훔쳐 온 물건들도 대단한 것이 아닌데 심지어 그 물건들을 처분해서 마음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땅에 묻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살인 그 이상의 큰 사건이 된다.


'라스콜니코프' 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그의 대학 친구인 라주미힌에게 부탁해서 과외나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야 라주미힌을 찾아갔고, 그의 여동생이 돈 때문에 결혼할 것임을 어머니의 편지로 알려왔을 뿐 결혼식이 끝난 것도 아니라서 눈물을 흘리며 절망하고 분노하는 대신 그의 여동생을 설득해볼 수도 있었다. 이 가난한 대학생에게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살인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되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서야 소설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도 않아 기어코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내리친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전당포를 방문한 이후 싸구려 술집에 들어가 어느 대학생과 젊은 장교의 대화를 들었을 때,

'라스콜니코프'는 그 노파를 죽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자신의 물음이기도 했을 테니까.


"얘기 좀 들어봐. 쓸모없고, 하찮고, 모든 사람들한테 해만 끼치는 병든 노파가 있어. 그 노파는 얼마 있으면 곧 저세상으로 갈 사람이라고, 내 말 알아들었어? 반면에 세상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해 좌절하는 젊은이들은 수도 없이 많아. 노파의 돈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파멸에서 해방될 수 있고, 타락한 생활과 성병 치료소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 세상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전제하에 노파를 죽이고 돈을 훔친다면 넌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하나의 작은 범죄가 나중에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보상받을 수는 없는 걸까?"

>>> page 40 끔찍한 살인 중에서


'라스콜니코프'는 대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위인과 평범한 사람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는 생각.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것. 위대한 것을 위해 보잘것없는 것을 버려도 된다는 것. 그 무언가 더 나은 것을 위해 그 무언가 더 모자란 것을 짓밟아도 된다는 것. 가난한 대학생으로서 남은 거라곤 자존심 뿐인 그의 절망과 분노가 물욕밖에 없는 노파를 향해도 된다는 것. 물욕이란 천박하다. 그가 그의 여동생의 결혼을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다. 돈이 아무리 절실해도 추한 돈은 필요치 않다.


"난 지금 자수하러 가는 거야. 하지만 내가 무엇 때문에 자수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

두냐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죄의 절반을 씻는 건 아닐까?" 그녀는 그를 안고 입을 맞췄다.

"죄라고? 무슨 죄 말이야?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해로운 이같은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인 죄 말이야? 과연 그게 범죄일까? 난 단지 비열함과 무능함 때문에 자수하는 거야. 포르피리가 말한 것처럼 자수가 감형에 유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

>>> page 288 가족과의 작별 중에서


그런 그에게 보잘것없는 가족을 위해 몸을 팔며 자신을 희생하는 '소냐'가 나타나 그가 가진 사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녀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고 기꺼이 희생했으며 자신이 죄인이라며 신에게 용서와 자비를 구했다.

그는 '소냐'와 자신의 처지가 똑같다고 여겼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버린 '소냐'와 가족과 더 나은 세상을 노파를 죽인 '자신'의 처지가 똑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노파를 죽였다는 그 사실에 회죄하지 않았다. 계획에도 없던 '노파의 이복 여동생'을 죽인 일에 대해서도 변명할 수 없었다. 그녀야말로 '소냐'와 같은 사람일 텐데 말이다. '소냐'는 죽은 그녀의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다. '라스콜니코프'에게 '소냐'는 같은 처지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대신 용서해 줄 그 누군가로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딘가에서 읽은 [죄와 벌]의 해석처럼 성서적, 신앙적 측면으로 '라스콜니코프'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시각에서의 '소냐'를 통해 새로운 삶으로 부활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또한 이 책의 역자 해설에 있는 것처럼 성적인 해석에도 동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전당포 노파를 죽이려고 마음을 먹은 뒤 살인, 자수하여 시베리아까지 가는 동안의 모든 이야기에서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쉽게 죄를 짓고 또 그만큼 쉽게 구원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형량을 채웠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 누군가의 사랑으로 끔찍한 사실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 개개인이 '라스콜니코프' 일 수 있다. '소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안에도 '라스콜니코프' 가 가졌던 물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의 대답은 무엇일까. '라스콜니코프'가 쓸모없는 노파를 죽이고 재물을 훔쳤지만 더 나은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라스콜니코프'의 사상이 변했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노파의 이복 여동생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소냐'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그 사건을 모두 정화시킬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다시, 나의 대답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제 죄와 벌 상,하 또는 1,2권을 읽어낼 수 있겠다. 준비가 됐다.

다시 읽어도 처음처럼 재미있을 것이다. 대단한 소설이다.


** 책 표지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든다.





※ 위의 글은 도서리뷰단에 선정되어 해당 출판사가 무상으로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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