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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ㅣ 암실문고
브라이언 무어 지음, 고유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평점 :

1950년대 40대 독신 여성의 이야기를 적은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요즘 비혼 혹은 미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비주류에 속한다. 그런데 무려 1950년대에 출판된 미혼 여성의 이야기라니! 도레스 레싱 작가는 처음으로 여성의 일상을 소설로 적었다는 업적을 세우며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 책 역시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여성의 인생을 담았다는 그 가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이유가 있지 않을까?
미혼의 삶에 대한 어떤 용기 같은 것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조금 실망할수도 있다. 요즘 많이 나오는 당당한 비혼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거의 100년 전에 미혼으로 살아온 여성의 이야기를 또 어디에서 읽을 수 있을까. 굳이 모르더라도 지금 당장 내 삶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도 언젠가 주디스 헌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도 있으니, 혹은 여전히 주변에 남아있는 또 다른 주디스 헌들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아무도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뿐이다.
저 두 문장이 이 책의 전체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주디스 헌을 미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하고 못생긴 데다 미혼이기까지 한 주디스의 인생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어딘가 마음이 불편했다. 나 역시 주디스를 사랑하지 못한 채로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한테 무조건 과몰입하는 편이다. 근데 그런 나조차 술에 중독되어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버린 주디스가 이따금 너무 멀게 느껴졌다.
>>주디스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근데 왜 자꾸 저렇게 행동하는거지..? 그치만 주디스가 미운 건 아니야... 그래도 내 친구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대체 내 마음은 뭘까..?<<
이 상태로 계속 책을 읽었다. ㅋㅋㅋㅋㅋㅋ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 마음은 뭘까..? 사실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주변에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왠지 친해지기는 싫은 사람들이 종종 있다. 보통은 약자에 속하는 그 사람들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분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면하자니 딱히 외면할 이유는 없어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다가가기는 싫은.. 이런 모순된 내 마음을 마주보기가 싫어서 계속 마음이 불편했던 걸까? 책을 읽다 보니 장희원 작가님의 우리의 환대가 생각났다. 주디스도 우리의 환대 속 아들처럼 훌쩍 떠나버린 어딘가에서 자신을 환대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까지 그 누구도 진심으로 주디스를 반겨주지 않았던 사회가 너무나도 무정하다. 그렇지만 제일 슬픈 사실은 우리가 살고있는 지금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 그렇기에 이런 소설들이 계속해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외롭게 느껴진다.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교양 수업을 대학교 다닐 때 들은 적이 있다. (ㅇㅈㅇ 교수님 잘 지내시죠..?ㅠ) 나는 대체 종교가 어떤 위안을 주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허황된 존재에 매일 기도하는지 항상 궁금했다. 저 수업을 들을 때 처음으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특히 불교 교리는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나는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역시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대체 종교란 무엇인가..ㅋㅋㅋㅋ 그런 생각이 든다. 주디스는 그렇게 바라던 신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주디스보다 훨씬 탐욕적이고 비도덕한 사람들이 훨씬 환대받으며 살아가는 그 현실이 내 상식에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넷플릭스에서 봤던 폭격에서 전쟁으로 죽어가는 어린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신이 있는데도 왜 이런 전쟁이 일어나는 건가요? 수녀님이 대답했다. 신이 잠깐 연필을 떨어트려서 줍고 있을 수도 있다고. 신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너무 달라서 우리에겐 그 찰나가 이토록 길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다고. 주디스의 신도 잠시 연필을 줍고 있었던 걸까? 고작 연필을 줍는 사이에 내 삶이 그렇게 무너질 수도 있다면 우리가 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주디스도 마지막엔 그런 생각을 했을까?

마지막 주디스의 말이 계속 생각난다.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주디스의 열정이 마지막까지도 외로웠다고 생각하면 쓸쓸하다.
치열하게 살아온 주디스의 삶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그 외에도 책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 19세기 벨파스트에서 일어났던 문제들이 현대와 겹쳐 보이는 것도 유감스럽다. 말은 서로에게 닿아 언어가 되어 우리를 소통하게 만들어준다. 소통할 사람이 없던 주디스에게 남은 것은 외로운 독백뿐이라는 사실이 마지막까지 신경 쓰인다. 서로의 말이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누군가 주변의 주디스 헌을 반겨줄 수 있는 사회가 찾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