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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간 ㅣ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평점 :
2023년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보다 좋은 작가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 별의 시간을 다 읽고 제일 먼저 한 생각이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박솔뫼 작가님이 생각났었다. 박솔뫼 작가님의 책을 읽다 보면 각각의 문장들이 책 위를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 책이 딱 그랬다. 나는 책이 글로 표현됐을 때 가장 경이로운 그 순간을 너무 사랑한다. 문자가 아니면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책들이 좋다. 하지만 번역서는 결국 번역가의 의견이 한번 들어간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가의 글 자체를 좋아해 본 적은 별로 없는 거 같다. (내 청소년기를 책임진,, 팀보울러 선생님말고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정말 살면서 처음으로 외국 작가의 글 자체가 좋아졌다. 다 읽은 날 바로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주문했다. 여성의 날이 가까운 이 계절에 이 책을 보내주신 세계 최고의 을유출판사,, 감사합니다,,
온 세상이 '그래'라는 말 한마디에 시작됐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우주는 우연히 빅뱅이라는 대폭발이 일어나서 생겨났다. 그런 단순한 계기로도 우주가 생겨나는데 책 속의 화자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단순함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리스펙토르 작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별의 시간에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특히 책의 시작에 나오는 저 문장이 작가님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둔 것 같아서 기억에 남았다. 작가님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전쟁을 피해 브라질로 이주했고 브라질의 여성주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 살았다. 저 한 줄보다도 별일 없이사는 나도 쥐콩만한 머리에 들어있는 생각이 너무 많다. 단순하다는 그 단어가 가진 평화로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첫 페이지부터 저 문장이 던져준 질문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책 속의 화자에게, 마카베아에게, 리스펙토르 작가에게 단순함이라는 것은 왜 그렇게 멀었을까.
마카베아의 인생은 불행했지만 특별할만큼 새롭지는 않다. 책 속에 남성 작가로 나오는 화자의 말을 빌리면 이런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가 얼마든지 쓸 수 있을 법한 것이고, 그 누군가는 남성 작가일 것이다. 여자가 쓰면 눈물에 절여진 감상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남성 화자가 적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의 역설이 이상했지만 익숙하기도 했다. 너무도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살을 살아가는 여자들은 많지만 그에 저항하는 여자들은 거의 없다. '누구'에게 불평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자에게 불평하기엔 우리는 서로의 피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남자에게 불평할 수 있을까. 부당한 노동이 싫다며 사장이 있는 방문을 열고 불평하는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말이란 언어를 매개로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다. 전달될 대상이 없다면 말을 하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마카베아가 불행한 삶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행복해했던 이유는 이런 자기방어의 수단 중 하나였겠지? 책을 끝까지 읽고 앞으로 돌아와서 저 문단을 다시 읽었을 때 마카의 인생이 내 인생과, 혹은 다른 여성들의 인생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카베아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나오는 초반의 내용들은 리스펙토르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적어둔 것 같았다. 한강 작가님의 흰을 처음 읽었을 때 이게 소설인가 산문인가 헷갈렸다. 이 책도 그랬다. 처음에 화자가 자신이 남성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소설이 아니라 작가님의 산문을 읽고 있다고 착각했을 것 같다. 마카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아와 삶이라는 주제에 대한 성찰이 길게 적혀 있는데,, 난 이 문단들이 하나하나 너무 좋았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누군가가 평생에 걸쳐 해왔을 생각을 글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제목처럼 리스펙토르라는 별이 살아온 시간을 짧게나마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카베아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제대로 깨닫는다. 누군가는 마카의 인생이 굴욕적이고 불행했다고 얘기하지만 마카는 그런 삶도 행복하다 생각했다. 그런 자신에게 풍족하며 사랑받는 미래가 존재한다는 말은 마냥 기쁘게만 들리진 않았던 것 같다. 결말에 대한 충격이 조금 가라앉고 나니 문득 내가 처음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에 대해 배웠을 때가 생각났다. 페미니즘을 모르고 살았을 때는 그 삶 역시 행복했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 못했던 것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가는 많은 여성들을 볼 때도, 티비 속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남성인 장면을 바라볼 때도 그닥 힘들지 않았다. 매일 내게 주어진 어떤 사소한 것들이 좋았고 행복했다. 그래서 처음 그것들이 부당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내 지난 삶들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앞으로의 미래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짧은 슬픔이 지나고 찾아온 감정은 역시 기쁨이었다. 나에게도 좀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과 앞으로 찾아올 수많은 유대들이 설렜고 즐거웠다. 마카는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했다.
"미래에 관해서는."
그 후에 화자는 말한다. 두려워 말라, 죽음은 순간이며, 그러니 순간 속에서 지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 여자와 함께 죽었기에 그걸 안다. 죽음이라는 고통이 찾아올 것을 직감으로 깨달은 순간 마카는 저 말을 또렷하게 말했다. 이는 과연 모순적인 것일까? 이 책에만 한해서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순간 속에서 지나간다. 순간 지나간 죽음 후에 마카에게 다가올 미래는 그 전과는 다를 것이다. 그 전보다 더 행복한 미래는 어쩌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사실 죽음이라는 그 자체로 끝이 다가올 수도 있다. 내가 페미니즘을 알게된 후로도 사실 내 인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내 하루는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렇지만 미래에 관해서는? 마카베아의 죽음을 함께 경험한 뒤의 내 미래에 관해서는 아직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마카베아가 마지막에 느낀 삶에 대한 감정들은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다.빛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별의 시간은 얼마나 길까?
마카베아는 한 순간에 죽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은 결코 비참하게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미래를 이야기하다가 떠난 마카베아를 떠올리면 죽음이라는 공포가 별일 아니게 들리기도 한다. 죽어가는 별은 반짝이며 자신의 마지막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주 짧은 그 반짝임의 시간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일단 내일 일어나서 제철 딸기 씻어먹기..🍓 마침 지금도 딸기 철이니까..🥺
결국 마지막은 무언가에 대한 찬미로 이어지는 이런 책들을 정말 좋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냥 희망찰 필요는 없다. 99%가 비참해도 괜찮다. 그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마지막 한 줄이라도 그런 삶에 대한 존경이 존재한다면 그것으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