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제도권을 박차고 나온 장정일의 글쓰기와 생각은 마치 방금 잡아올려 가장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줌으로써 더 슬퍼지는 싱싱한 물고기를 떠올리게 된다. 김수영문학상 으로 대변되는 그의 이력과, 장정일식 코드를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시대의 기득권을 불편하게 했던 청년시절과 시대를 투영하는 문학의 잣대가 아닌 한낱 가십거리로써 다뤄졌던 거짓말과 그 이후의 파장들.......

 가진것이 글쓰는 기술이 전부인 작가가 생존을 위해 꿈틀거리면 거릴수록 (창작을 하면 할수록..)엄청난 양의 낚시로 무장한 기득권은 그의 코를 꽤어 가십거리로 전락시켜 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장정일하면 거짓말과 포르노그라피 같은 작품을 쓰는 3류 딴따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글쓰기를 통한 문제제기는 문학의 틀을 뛰어넘어 연극과 영화 (거짓말, 아담이 눈을뜰때, 301 302,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라는 문화 전반에 파급되어 대중속으로 뛰어 들었지만 작가의 상상력에 미치지 못한 연출력으로 인해 그의 세계를 조망하는데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못했다.

 그의 시와 소설속에 많은 공감을 느꼈던 나이지만 그의 글쓰기에 진정으로 매료된것은 엄청난 독서량을 주체할 수 없어 한숨에 써내려간 듯한 독서일기 시리즈를 통해서이다. 삶과 문학, 정치 모두가 변죽을 울리고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고정되어 있을때 그의 시선은 그것을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정수리에 촛점을 겨냥하고 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시대의 정수리를 겨냥하고 나는 그의 촛점을 따라 지난 7년간을 시대와 나의 관계를 설정해왔다.  인물과사상과 근접거리에 자리하는 그 이지만 청년시절 박찬호의 공처럼 150km 넘는 불같은 광속구에 파열음을 내며 시대의 걸리적거림을 하나씩 깨드렸던 인물과 사상에 비해 장정일의 다양한 시각과 촛점은 130km중반의 팔색조의 변화구로 피칭 아티스트라 불리는 매덕스라고 할까?

 90년대 우리사회의 위선과  추악함을 강단과 문단에서 정면으로 고발했던 마광수와 장정일은 이제 대중의 가십에서 벗어나 진정한 재조명을 시도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삼국지 이후 처음으로 출간된 생각은 독서일기처럼 그의 사고를 가감없이 전해주는 촉매제이다. 독서일기가 원작자의 시각을 빌어 세상을 비춰주는 거울이었다면 생각은 내면화된 독서의 일기가 숙성되어 발현되는 포도주와 같다고 할까!

 자신의 성향을 꼭 꼬집어 밝히지는 않았지만 진보적인 색채를 굳이 숨기지 않았던 저자자 독서일기 6권 머리말에서 밝혔던 한 대목을 통해 자신의 진보를 드러냈다.

"시민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愚衆)이 된다

  책과 멀리 할수록 그 사람은 사회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수구적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의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나쁜 시민이다.

  독서는 논술이나 수능을 잘 치르기 위해서 필요한것도

  또 교양이나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독서는 민주 사회를 억견(臆見)과 독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다.

   좀 과격한 독서론일지는 모르겠으나 요 몇년 동안 내가 도달한 생각은 그렇다"

   좀 과격한 독서론일지는 모르겠으나 요 몇년 동안 내가 도달한 생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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