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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이지, 당신이 그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면, 아무렇게나 말해도 좋다. 부적응아, 철없는 아이, 미성숙아 등등. 헌데 제기랄, 미성숙아라니, 하지만 콜필드는 콧털 끝만큼도 상관치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미성숙하다고 한다면 당신은 단단히도 그를 싫어하는 셈이다. 가령 소변을 아무데나 보는 사람에게 철없다고 한다면 그 광경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의 인격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미성숙하다고 한다면 이건 뭔가 다르다. 그를 증오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는 셈이다. 미성숙, 이는 수치감을 주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스탈린이나 히틀러가 아닌 이상, 매일 자식을 두들겨 패면서 키웠던 계모가 아니라면 콜필드를 미성숙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이제 난 당신을 결코 좋아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옥에나 가야 당신 엉덩이를 붙일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아마 당신이 평범하다면, 대학 때 술마신 돈 만큼보더 좀 더 적게 여자에게 쏟아붓고 그보다 더 적게 씹고 소화시키는데 들이 붓고, 석판에 쩍쩍 달라붙는 고기맛에 죄책감을 느껴 가끔가다 소액을 책을 사는데 던져 넣었던 부류라면, 콜필드가 철없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리고 사십살쯤 더 먹어서 침대에 신문하나 던져서 올리지 못할 신세가 될텐데, 한가지 아쉬운 것은, 그 나이에 당신 머리는 비계로 가득 차서 사십년전에 콜필드를 철없다고 단정지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것이라는 점이다. 이건 진짜 아깝다. 진짜 말이다.
난 스물다섯이다. 그리고 신병대에서 머리 빡빡밀고 겁먹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녀석들을 '정예공군'으로 키워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공군도 나쁘지는 않다. 입대한 녀석들 중 반이 비행기 구경도 못한다는 사실을 빼면 말이다. 홀필드 같은 청년이 입대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화나고, 외롭고, 우울하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영혼을 가진 청년들을. 게다가 그들이 비행기는 커녕 그 비슷한것도 구경 못 할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할말을 잃을텐데. 젠장, 그의 엉덩이라도 때려서 "성숙해져! 어른이 되란 말야!' 라고 귀에 대고 다그쳐야 하나.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아무튼 그 비슷한 것이 되려는 녀석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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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미 그보다 열 살 가까이 더 많다. 학교에서 내쫓기기에는 너무 늙었고, 책읽는게 영화보는 것보다 귀찮아지려는 나이다. 하지만 열 살 적은 소년의 순수함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콜필드가 나를 그럭저럭 쓸만한 놈으로 기억할 수 있게 말이다. 앞으로도 나에게 순수함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조금 남아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콜필드 덕분일 게다. 콜필드하고 그의 빌어먹게 재밌는 말투 덕분일 게다.
눈을 감고 길을 건넌다. 나를 없어지지 않게 해줘. 이봐 콜필드, 나를 없어지지 않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