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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윌리 ㅣ 웅진 세계그림책 25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웅진주니어 / 2000년 9월
평점 :
재키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술의 문외한이다. 가끔은 전시회장을 찾아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지만, 작품들을 보면서 심오한 작가의 영감에 동의하게 되거나 평론가들의 날카로운 감상평에 동조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화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왜 이그림의 제목이 이걸까? 등등 질문만 많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정말 재키만 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미술작품들을 보면서 작가의 영감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에 쉽게 동화될까? 정답을 모르겠다. 그저 짐작컨데 재키는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도 미술관에서 작품 앞에 서서 재키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들을 할거라 생각한다.
어른들도 그러할진데, 아이들의 경우에는 오죽할까? 돌도 되기 전, 조기교육의 일환으로 명작 그림과 대면하기도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과연 명작 그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어쩌면 윌리처럼 '발칙한' 눈으로 명작 그림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키도 아이들에게 미술작품과의 대면을 위해서 전시회에 줄레줄레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아이들을 위한 도록도 사주곤 했다. 큰 아이 은(10세)은 그런데로 흥미를 가지고 해설을 읽기도 하고 작품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둘째 헌(4세)이에게 미술작품에 집중시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앤서니 브라운의 '윌리'시리즈를 너무 좋아하기에 이 책을 구입함에 있어서도 다른 이유는 별로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펴서 읽어(?)나가며 나는 이 책의 독특하고 탁월한 장점들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이는 책을 펴자마자. '아~! 나 이 그림 알아' 하면서 바로 명작과 짝짓기를 했다. 그리고는 이곳저곳 윌리의 재치있는 패러디가 된 부분들을 찍어냈다. 그러는 은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헌이는 이 그림이 명작의 패러디인지 뭔지 잘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냥 그림 속의 다양한 표정와 몸짓의 원숭이들이 재미있을 뿐이다. 마치 숨은 그림찾기를 하듯 그림들을 자세히 살피고, 실려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어 즐거워 한다.
아이들에게 명작들을 보여줘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느끼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명작은 아니지만, 명작을 잘 패러디하여 적당한 미소를 지어내게 하는 이런 작품들도 분명 아이에게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명작은 심히 불경(?)스러울 지라도 딱 아이의 눈높이까지 끌어내려 아이가 직접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교육이 아닐까 싶다.
이책을 다 읽고 나자 은이는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고 한다.윌리의 생각을 그림에서 읽어내듯이 이번에는 작품들에서 화가의 생각들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헌은 그저 그림을 보고 키득이며 웃는다. 그리고는 헌이만의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한다. 우리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의 하나인 미술. 그러나 이 미술이 어렵거나 힘든 것이 되어서는 절대로 되지 않는다. 다른 예술이 그러하듯이 미술 역시 즐거움의 근원이어야 한다.
이 그림책은 원작에 '불경한 붓칠'을 하기는 하였지만, 미술이 조금더 친근하게 우리와 대면할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책이다. 아이가 명화들을 얼마나 아는지 모르는지와는 무관하게.
그리고 한가지 더. 은이에게 네가 윌리가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했다. 명화 하나를 골라 네 생각을 담아 네 맘이 원하는대로 바꾸어 보자고. 은이는 이 유괘한 도전을 흔쾌히 승낙하였다. 은이가 커서 훌륭한 화가가 되어 명화를 그리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재키처럼 미술의 문외한인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이 되더라도 미술관에 가서 명화앞에 서게 될때, 재키처럼 이해하지못하고 느끼지 못해서 난감해 하기보다는 윌리처럼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명화를 즐기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어린시절 <미술관에 간 윌리>를 읽었던 기억을 더듬으며.